중국이 반도체 계속 때리는데… 무기력한 우리 정부

입력 2018.11.21 03:01

반년째 삼성·하이닉스 반독점조사
文대통령, 시진핑에 거론도 않고 외교부·통상당국은 소극적 대응

중국의 한국산 수입 추이와 메모리 반도체의 비중
지난 5월 31일 중국 정부는 외국 메모리 반도체 3사에 대한 가격 담합 조사에 전격 착수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대상이다. 당시 중국 언론은 "3사가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되면 2016년 이후 반도체 판매액 기준으로 과징금 규모가 최대 80억달러(9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반독점 조사 착수 이후 일주일 뒤인 6월 5일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중 상무장관회의에서 반도체 업체 조사와 관련해 공정한 처리를 요청했다. 백 전 장관은 같은 달 8일 반도체 업계와 현안 회의를 열어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산업부가 중국 반도체 반독점 조사와 관련해 업계와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밝힌 건 그때가 유일했다.

주중 한국 대사관은 "6월 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중국에서 상무부장을 만나고, 7월 말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즈앙마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장과 회담했다"며 "노영민 대사도 지난 6월 한·중 고위 경제인 대화 때 중국 고위 경제 관료들을 상대로 공정한 조사를 당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6일 중국 반독점 조사 당국이 "증거 자료를 다량 확보해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고 밝힌 뒤 산업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이 작년 한국에서 수입한 금액은 1772억달러(200조원)다. 이 중 반도체는 26%인 463억달러(52조원)다.

중국 정부가 우리 기업에 대한 견제 조치를 잇달아 취하고 있지만, 대통령·외교부·통상 당국 등 우리 정부는 무기력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해 '대중(對中) 통상 외교 실종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파푸아뉴기니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우리 측은 반도체 반독점 조사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 완화만 매우 완곡한 표현으로 요청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양국 간 교역 투자, 인적 교류가 증가하는 등 한·중 관계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며 "(그러나) 양 국민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여러 가지 합의는 점차적으로 이행되고 있다.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시각차를 드러냈다.

외교부도 산업부와 대책 협의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의 어느 기관이 카운터파트(상대방)인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업계에서도 "중국이 본격적인 한국 기업 견제에 나서는데 우리 정부는 무기력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자 최근 중국 푸젠진화반도체 등을 마이크론의 영업 기밀을 훔친 혐의로 기소하고, 푸젠진화에 자국 장비·부품·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중국에 대한 통상 당국의 소극적 태도는 대미(對美) 통상 현안을 다루는 방식과 너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반도체 조사와 비슷한 시기인 5월 23일, 미국 상무부는 "수입 자동차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며 무역확장법 232조와 관련된 조사를 시작했다. 산업부는 하루 뒤 국내 자동차 업체와 민관합동특별팀(TF)을 꾸려 미국 동향 점검을 하며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이후 두 달 동안 민관TF(2차례), 전문가 간담회(2차례), 통상추진위원회 실무회의,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잇달아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 의견서를 마련했다. 7월 18~20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대표로 한 민관 합동 사절단은 미국 워싱턴에서 의회와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설득 활동을 벌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산업부가 주무 부처로서 대응하고 있으며 따로 협조 요청 등을 받은 것은 없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통상·외교 당국이 미국과는 협의해 본 '노하우'가 많아 자신감을 갖고 있지만, 사드 보복 당시 전혀 협의가 통하지 않는 중국을 보면서 '그저 선처만 바랄 뿐'이란 식으로 손을 놓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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