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 ‘울시 파이어’가 서울 면적의 반 이상을 태웠다. 그 목전에 미술관 J 폴 게티 센터가 있었다. ‘모나리자’가 있다 한들 사람보다 중하겠느냐마는 많은 이들이 미술품의 안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작년 산불 때에는 불씨가 미술관 앞마당까지 날아들기도 했다. 그러나 불씨는 철저한 방재 시스템에 가로막혀 맥을 못 추고 사그라졌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미술관 J 폴 게티 센터.

14년 동안 1조원의 건축비를 들여 1997년 말에 개관한 게티 센터는 9만9000㎡(약 3만평)의 대지 위에 건물 여섯 동(棟)과 사시사철 꽃이 피는 정원이 있는 복합 문화 단지다. 건축가는 흰 건물을 주로 지어 '백색의 마이어'라고 불리는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1934년생). 그는 건물의 외벽을 석회암의 일종인 트래버틴으로 둘러쌌다. 햇빛을 받으면 하얗게 빛나는 트래버틴은 대표적 내화(耐火) 소재다. 지붕까지 내화성 석재로 덮은 건물 주위로는 물기가 많은 관목을 심고, 우거진 나무들은 땅에서 불길이 옮아 붙지 못하게 주기적으로 전지(剪枝)를 한다. 거대한 정원 바닥에는 스프링클러가 촘촘하게 박혀 있고, 지하에는 400만L짜리 저수조가 있다.

만약 이 장벽을 뚫고 건물까지 불이 번진다면 각각의 전시실은 실내 기압을 높여 연기를 차단하고 모든 칸막이에서 방화벽이 내려오게 되어 있다. 천장의 스프링클러는 최후의 수단이다. 미술품은 불에 타거나 물에 젖거나 똑같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내 파이프는 평소에는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도록 바짝 말라 있다.

전시장 곳곳에는 화재경보기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빨간색이 아니라 옅은 회색이다. 온통 하얀 인테리어에 빨강이 안 어울려서 소방 당국의 허가를 얻어 바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