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배우러 오는데 '한국어2급' 내라고?

입력 2018.11.19 03:00

법무부, 불법체류 늘자… 일반연수 비자 강화 검토해 논란
중국 등 26개국 대상… 대학들 "한국 좋아 오는 학생들 막나"

어학연수 비자로 입국한 불법체류자 수 그래프

중국인 전후이(貞慧·28)씨는 서울의 한 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2년 전 어학연수에 필요한 '일반 연수 비자(D-4)'를 받아 한국에 입국할 때만 해도 한국어를 거의 못했다. 목표는 자막 없이 한국 드라마 보기였다.

2년째 공부한 덕에 이제는 한국 드라마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도 문제없이 본다. 지난 5월 한국어능력시험(TOPIK ·토픽)에서는 5급을 취득했다. 토픽(1~6급) 가운데 상위 2번째 단계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친숙하지 않은 소재에 관해서도 이해하고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씨는 "한국에서 공부한 덕에 이제는 신문도 읽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 커졌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전씨 같은 사람이 한국으로 어학연수생으로 오기 어려워질 수 있다. 법무부가 중국인 등 일부 국적자에 한해 D-4 비자 심사에서 한국어 능력을 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불법 체류자가 많은 중국, 베트남 등 26곳 국적자가 대상이다. 법무부는 비자 신청 단계에서 '토픽 2급 이상'을 요구하는 방안을 놓고 대학 어학당에 의견을 묻고 있다.

2급은 '우체국·은행 등을 이용하거나 전화와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어휘 능력을 갖춘 수준'이다. 현재 외국인은 범죄 경력 등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D-4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법무부가 규제를 검토하는 이유는 D-4 비자를 불법 체류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9월 말 기준 D-4 비자로 입국해 불법 체류자가 된 사람은 1만1177명이다. 작년(7136명)보다 2배로 늘어난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불법 체류자는 늘어나는데 단속 인원은 턱없이 부족해 이런 대책을 마련하게 됐다"고 했다. 불법 체류자 전체 인원은 올해 35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법무부의 단속 전담 인력은 250여 명이다.

대학들은 "우리말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한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데엔 한계가 있고, 토픽 시험을 시행하지 않는 국가(130여 곳)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유명 대학 한국어학당 관계자는 "한국이 좋아서 오는 학생을 도리어 우리가 막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다른 나라에서 어학 연수생의 언어 능력 제한을 두는 경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충북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어학 연수생이 절반 이상 줄 것"이라고 했다.

전북의 한 대학교는 베트남 현지에 한국어교육원을 둬 연수 희망자에게 미리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류 전파의 교두보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 한국어교육원 교수는 "한 반 12명 학생 중 3~4명은 K팝 팬이다"라면서 "쉬는 날 본국의 친구들을 초대해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다니고, 그 친구들 가운데 우리 교육원에 입학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불법 체류 기준이 엄격한 미국 등도 어학 연수생에게 자국 언어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연수생이 불법 체류자가 되지 않도록 관리한다. 미국은 어학 연수생들의 어학원 출결 상황을 3~4주마다 확인한다. 결석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경우 즉시 연수생 신분을 빼앗고 수사에 나선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한류를 알리는 주된 층은 외국에서 온 어학 연수생"이라며 "입국에 제한을 두는 것보다 불법 체류자가 되는 연수생을 관리할 방안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19일 대학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연 뒤 연말에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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