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쇼쿠'의 진격… 홍대 앞을 통째로 일본풍으로 바꾸다

조선일보
  • 표태준 기자
    입력 2018.11.19 03:00

    [일본 대중문화 개방 20년] [下] 한국에 스며든 日流

    20년 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당시 한국 문화가 일본 콘텐츠에 점령당할 것이란 우려가 쏟아졌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한국이 일본에 수출한 콘텐츠 산업(13억7600만달러·이하 2016년)은 일본이 한국에 수출한 규모(1억5000만달러)에 9배 앞서 있다.

    하지만 K-팝 등 한류 콘텐츠가 일본을 강타하는 사이 한국 속 일류(日流)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흐르고 있다. 주요 번화가를 일본풍으로 바꾸어 놓을 정도로 일본 음식 '와쇼쿠(和食)'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요즘 '뜨는 거리'는 '재팬 타운'

    2006년 5272개였던 '일식 전문점' 수는 올해 8월 1만7290개로 3배 이상 늘었다. 서울 홍대입구·강남·서울대입구역 등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거리에는 일본풍 건물에 일본어 간판을 단 음식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20~30대 젊은이와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홍대앞은 '한국의 재팬 타운'으로 유명하다. 홍익대 앞 거리에 일식당과 일본 디저트 가게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여행 리뷰 앱에서 '홍대'를 검색하면 '식당 종업원이 일본 전통 옷을 입고 일본말로 인사하는 곳' '일본 음식 문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처럼 외국인들이 남긴 리뷰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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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한 거리가 아니다. 서울 홍익대 앞 거리에는 일본 간판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작은 사진은 일식 요리 전문 학원에서 일식 음식점 창업을 꿈꾸는 30~40대들이 일본 요리 조리법을 배우는 모습.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이진한 기자
    일식 점포 창업은 요즘 30~40대 퇴사자가 가장 희망하는 창업 아이템이다. 15일 오후 찾은 서울 강남구 일식 요리 전문 학원에서는 수강생 25명이 일본식 요리·제과·제빵 기술을 배우는 중이었다. IT 기업에서 18년 일하다 올해 회사를 그만둔 손우형(45)씨는 "별다른 기술 없이 퇴직하면 결국 경쟁이 포화 상태인 치킨집을 차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면서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잘하는 메뉴에 집중해 장인 정신을 가지고 일하면 적어도 망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으로 일식 요리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학원 수강생 대부분은 대기업·제약회사·IT 기업 등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이들이다. 학원 이사장 나카무라 데쓰씨는 "수강생 70% 이상이 창업을 준비하는 30~40대"라며 "9년 전 처음 학원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한국 일식당은 회나 스시집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일본 가정식부터 디저트 전문점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한국인 입맛 장악한 '와쇼쿠'

    전국 일식전문점 수 그래프
    일본 음식 '와쇼쿠'는 한국인 입맛을 장악했다. 인천에 사는 김민경(38)씨는 하루 세 끼를 거의 일본 가정식으로 먹는다. 김씨는 "간단하게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다 보니 선호하게 됐다"며 "양념을 많이 쓰지 않고 재료 맛을 살려 입맛에 잘 맞는다"고 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는 "혼자 또는 둘이서 간단하게 먹는 식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조용히 '혼밥'하기 좋은 일본 가정식이 인기를 끄는 것"이라며 "중식이나 양식이 '거하게 먹었다'는 느낌이라면, 일식은 '담백하게 먹었다'는 인상을 주다 보니 점심을 기름지지 않고 적게 먹는 요즘 트렌드와도 어울린다"고 했다.

    해산물을 즐겨 먹는 '어식(魚食) 문화'가 널리 퍼진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2016년 국민 1인당 연간 해산물 섭취량은 우리나라가 58.4㎏으로 세계 1위다. 2위 노르웨이(53.3㎏), 3위 일본(50.2㎏)보다 많다.

    문 교수는 "한국에 해산물을 즐겨 먹는 음식 문화 트렌드가 자리 잡으면서 해산물 요리법이 발달한 일식이 더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일본 여행 붐의 여파도 크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714만명 중 73.6%가 일본 여행 목적을 '음식 먹기'로 꼽았다. '쇼핑'(53.4%)이나 '관광지 방문'(38.2%)을 앞질렀다. 유진 일본정부관광국 과장은 "과거에는 도쿄 신주쿠에서 쇼핑을 하거나 온천 여행 등을 목적으로 했지만, 이제는 일본 미쉐린 맛집 투어 등 음식 먹기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여행객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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