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자 노쇼… 지방 우량中企 사람 없어 운다

조선일보
  • 강동철 기자
    입력 2018.11.15 03:44

    '초봉 3000만원대 중반+인센티브' 조건 내걸어도 구인난
    근무 여건·생활 인프라 등 이유로 신입 34% 3년 내 퇴사

    작년 16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A사에서는 최근 3년간 뽑은 신입사원 400여 명 중 3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이 회사는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24%에 달하고, 작년 영업이익률(영업이익을 매출로 나눈 비율)은 10% 이상일 정도로 우량 기업이다. 초봉 3000만원대에 매년 인센티브도 지급하고, 어린이집·의료비 지원부터 기숙사까지 제공한다. 하지만 근무지가 충청권이고, 대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다. 이 회사 인사담당자는 "뽑아 놓으면 나가니 1년 내내 채용만 하다가 시간이 간다"고 말했다.

    지난달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8.4%, 청년 실업자 수는 35만9000여 명이었다. 그나마 정부의 단기 일자리 대책으로 청년 실업률 10%를 찍었던 8월에 비해 소폭 하락한 수치다. 하지만 지난 12일 삼성전자 등 전자 계열사 5개사가 개최한 '2018 삼성 협력사 채용 행사'에서 만난 인사담당자들은 "양질(良質)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도 구직자들이 외면하고 어렵게 채용한 인재들도 금방 회사를 떠난다"고 말했다. 이곳에 참가한 협력업체 120여 곳은 삼성의 주요 협력사로 국내 중소·중견 업체들 사이에서도 가장 알짜 기업으로 꼽힌다. 이런 기업들마저 심각한 구인난에 허덕이는 것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서도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근속 연수는 6.4년에 불과하고, 입사 후 3년 이내에 퇴직하는 비율 역시 33.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중기라는 이유로 구인난

    인사담당자들은 젊은이들이 지방 거주와 교대 근무 같은 업무 환경을 이유로 중소기업 입사를 회피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름난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 아니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젊은이도 많다고 한다. 스마트폰 부품업체 B사의 인사담당자는 "단순히 회사가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면접 노쇼(no show), 최종합격자 노쇼 비율이 모두 50%가 넘고, 그나마 들어와도 1년간 재직하는 사람도 절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대졸 신입사원에게 3000만원대 중반의 연봉을 지급하고, 출퇴근 유류비 지원까지 해준다. 하지만 구직자들은 안산 반월공단에 회사가 있다는 이유로 기피한다는 것이다.

    12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삼성 협력사 채용 한마당’행사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 공고가 적힌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12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삼성 협력사 채용 한마당’행사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 공고가 적힌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경기도 평택에 있는 반도체 부품 업체 D사는 지난 3년간 150명을 뽑았지만 30%가 회사를 그만뒀다. 서울에 비해 생활 인프라 자체가 열악하다보니 젊은 구직자들이 여가 생활을 즐기기 어렵다는 이유로 떠난다는 것이다. D사 인사담당자는 "그나마 이것도 최근 삼성전자가 평택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지역이 발전하면서 줄어든 수치"라며 "평택이 중소·중견 기업 채용의 마지노선이고, 그 이하로 내려가면 사람 뽑는 게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 인사담당자는 "같은 삼성 협력 업체 중에서 외국계 기업은 임금과 근무 여건이 비슷해도 구직자들이 몰린다"면서 "젊은이들이 실속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것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도체 검사 장비 업체인 C사는 24시간 관리해야 하는 업(業)의 특성상 4조 3교대, 4일 근무·2일 휴무의 근무 체제로 운영한다. 이 회사 인사담당자는 "구직자들에게 교대근무라는 말만 꺼내도 '일 못하겠습니다'는 반응이 나온다"며 "차라리 서울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면서 서울, 수도권의 기업에 계속 지원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단기 일자리 늘리는 데 급급 말고, 장기적으로 인프라 투자해야 일자리 늘어

    중견·중소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높은 청년 실업률 속에서도 정작 기업들이 구인난을 겪는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하철과 도로, 생활환경 조성 등 지역 경제·인프라 확충에 더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중견 기업들의 공장, 본사가 밀집해 있는 전국 산업단지의 배후 지역을 개발해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부품 업체 E사의 인사 담당자는 "비(非)수도권 우량 중소·중견 기업이 구인난을 겪는 이유는 지역 인프라 격차 때문"이라며 "워라밸(삶과 일의 균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젊은이들의 지방 근무 기피현상은 더욱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서재윤 정책총괄실장은 "지하철 노선을 연장하고 광역버스 노선을 확대해 서울과 수도권에서 출퇴근할 수 있도록 해주면 중소·중견기업을 찾는 구직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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