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중국이 '北 비핵화 의지' 의심하는 이유

조선일보
  •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8.11.13 05:55

    核 도발과 실험 중단·협상까지… 北, 파키스탄 모델 연구한 듯
    미·중·영·불 '北 의지' 안 믿어… 우리만 '환상'에 빠진 것 아닌가

    안용현 논설위원
    안용현 논설위원
    1945년 2차 세계대전 마무리를 위해 미·영·소 3국 정상이 만날 때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상하리만치 스탈린에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동유럽에 대한 스탈린 야욕을 알면서도 모호하게 넘어갔다. 아직 끝나지 않은 대일(對日) 전쟁에서 미군 피해를 줄이려면 소련 참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4월 루스벨트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트루먼은 달랐다. 취임 100일 만에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폭탄'을 손에 넣자 스탈린을 단호하게 다뤘다. 처칠이 "사람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였다. 핵(核)을 가진 트루먼의 모습을 당시 미국 관리는 "잘 익은 큰 사과를 감춰놓은 소년 같았다"고 했다. 그해 8월 트루먼은 핵폭탄 두 발로 태평양 전쟁을 끝냈다.

    인도는 1974년 5월 첫 핵실험에 성공했지만 후폭풍에 시달렸다. 국제 사회 제재로 경제가 고꾸라지면서 인디라 간디 총리는 1977년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러나 앙숙인 파키스탄이 우라늄 농축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간디 지지율은 급반등했고 1980년 재집권했다. 인도 국민은 '핵 자신감'에 투표했다. 1990년대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인도·파키스탄 간 영토 분쟁은 핵 경쟁을 부채질했다. 인도는 건국 50주년인 1997년 5월, 사흘에 걸쳐 5차례 핵실험을 감행했다. 2주 뒤 파키스탄도 이틀간 6차례 핵실험으로 응수했다. 양국 모두 '핵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았지만, 20년 넘게 피땀으로 일군 무기를 내려놓으려는 곳은 없었다. 추가 실험을 멈추고 핵확산 금지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며 시간을 끌다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북은 이런 인도·파키스탄 모델을 열심히 연구한 것 같다. 6번째 핵 도발→실험 중단→핵 협상 등 지금까지 과정도 비슷하다. 이미 20~60개의 핵폭탄을 가진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 조치만 피하고 경제 봉쇄나 다름없는 제재 망에 숨구멍을 뚫을 수 있다면 시간은 북한 편이라고 여길 것이다. 핵실험을 6차례나 해놓고 스스로 핵을 포기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그래서 전 세계가 김정은의 이른바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것이다. 특히 핵보유국일수록 핵이 주는 자신감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두 달 전 "북이 파키스탄처럼 '조용한 핵보유' 전략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프랑스 정상이 문재인 대통령의 '제재 완화' 요청을 면전에서 거부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다.

    요즘은 중국 전문가마저 공공연하게 '북한을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달 초 문정인 대통령 특보가 참석한 베이징 세미나에서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미래 핵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북 비핵화) 진정성을 믿기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난징대 국제관계원장도 "한국이 김정은 꼼수에 넘어갔다는 시선이 있다"고 했다. 중국 역시 4000만명이 굶어 죽은 '대약진 운동' 폐허 속에서 핵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 100만명이 희생당한 '고난의 행군'을 겪고 핵을 쥔 김정은의 심리를 가장 정확하게 꿰뚫는 나라가 중국일 것이다.

    한국은 직접 핵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 정부는 멀쩡한 핵발전소도 없애려고 한다. 그런데도 김정은 마음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핵 포기 의사가 확고하다'고 연일 강조한다. 지금 북은 핵 신고·검증 등 실질적 비핵화 조치는 전부 거부하고 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외교 교사'로 불렸던 왕지쓰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장이 최근 국내 세미나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모든 안보 위기는 환상과 오판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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