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과학기술원, 설립 25주년 맞아 비약적 발전

입력 2018.11.11 15:48 | 수정 2018.11.11 19:01

광주과학기술원 본관에 걸린 연구력지수 세계 3위를 알리는 플래카드. 설립 25주년만에 광주과기원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권경안 기자

①황무지가 첨단과학1번지로
첨단산업단지와 지스트 추진
광주시민들, 지역발전 희구
1995년 대학원 5개과 개설
권경안 기자

‘지스트 스물다섯 빛나는 청춘’ ‘세계3위 2018세계대학평가QS 교수1인당 논문피인용수 부문’.

광주광역시 북구 오룡동 광주과학기술원(GIST) 주변과 캠퍼스에는 설립25주년과 성과를 간명하게 알리는 플래카드가 곳곳에서 나부끼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과수원과 논밭, 마을들이 옹기종기 펼쳐져 있었던 농촌지역은 이제 첨단과학산업단지와 대학캠퍼스로 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현장이다.

지스트는 카이스트(KAIST)에 이어 두번째 국립이공계특성화대학(원)으로 설립되었다. 지스트는 설립 25주년을 기념하고 미래비전을 설정, 새로운 25년(‘25+25’)을 의욕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지난 9일 기념행사를 가진 지스트는 25년의 역사를 정리했다. ‘스물다섯 GIST, 이야기꽃을 피우다’라는 제목으로 설립배경과 과정, 학교전통의 수립과 실천, 미래상의 설정이라는 개념 아래 ‘에세이’식으로 구성했다. 이 책자에 담겨진 내용을 가지고, 몇차례에 나눠 지스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보고 그려보고자 한다.

지스트가 개원한 때는 1995년 3월. 석사과정 제1회 입학식과 개원식을 함게 했다. 180명 정원에 1850명이 지원, 1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지스트가 이때 문을 열었지만, 그 연원은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과학기술원의 설립은 광주5·18 영령들 덕분입니다. 저희는 이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지스트의 설립에 관여했던 이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이다. 1980년 5월 이후 광주의 정치적 소외가 가져온 경제적 낙후를 개선할 수 있기를 광주시민들은 소망했다. 지역균형발전을 통한 부의 고른 분배를 위해 광주에 획기적인 지역개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 방안이 부가가치가 큰 생산기지건설과 우수한 인재를 길러낼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이었다.

정부는 대덕연구단지 조성을 마치고, 제2의 연구단지를 계획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광주시(최종만 지역경제과장)는 곧바로 TF팀을 꾸려 계획을 구체화하였다. 이듬해에는 유치활동추진위를 구성, 정부에 첨단단지의 광주건설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당시 김양배 광주시장은 최초의 구상보다 10배인 500만평으로 늘려, 1988년 4월 광주를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논란을 거듭한 끝에 1990년 7월 정부의 계획이 확정되었다. ‘첨단산업단지’라는 이름이 처음 적용되었다.

첨단산업단지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에 들어설 고등교육기관이었다. 첨단산업을 일으키려면 이 분야에 관련한 연구성과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부차원에서 설립타당성을 조사했다. 1991년 정부는 ‘제2의 과기대설립’을 확정했다. 전남대공대이전안, KAIST분원형태, 독자적인 대학형태를 놓고 공방이 거듭되었다. 결국 ‘광주과학기술원특별법’을 제정, 독자적인 대학형태로 학교설립이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설립위원회가 발족되었다. 박성용 금호그룹회장이 위원장, (KAIST 학사계획을 수립한) 나정웅 KAIST교수가 추진단장을 맡았다. 처음에는 대학과 대학원의 동시 개설을 목표했다. 공학계통의 중요분야를 대학원학과로 우선 편성하고, 수학 물리 화학 생물 등 기초학문중심으로 대학원과 통합된 학과를 구성하자고 정부에 건의했다. 그런데, 정부는 예산 등을 이유로 대학원만을 개설할 것을 요구했다. 수차례 줄다리기끝에 대학원의 우선 개설, 추후 학사과정개설을 조건으로 매듭지어졌다.

교수1인당 석사 2명, 박사 3명의 기준을 적용해 교수와 학생수를 제안했다. 카이스트와 명칭이 중복되지 않도록 정보통신공학과(현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기전공학과(현 기계공학부), 환경공학과(현 지구·환경공학부), 생명과학과(현 생명과학부)의 5개 학과로 결정되었다. 이 학과체제는 학문의 융합과 시대흐름에 맞는 새로운 영역을 열어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캠퍼스부지는 25만평으로 잡았다. 우선 15만평에 대학원을 짓고, 나머지 10만평운 대학이 들어서면 할용하도록 남겨놓기로 했다.

지스트 착공식이 열린 것은 1993년 10월 11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황무지 허허벌판의 캠퍼스 건설현장을 방문, 지스트의 1995년 3월 개교를 선언했다. 외국의 명문대학들처럼 붉은 벽돌로 건물을 쌓아올렸다. 1994년 첫 19명의 교수가 임용되었다. 교수들 모두 미국대학이나 국내 최고의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미국 AT&T Bell연구소의 박사와 옥스포드대학교수 등 14명의 외국교수들이 객원교수로 초빙되었다. 개원식에 1964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미국 타운즈 박사와 1974년도 수상자 영국 휴이시 박사가 초청되었다. 세계최고를 지향하자는 메시지였다.

필자도 광주과학기술원의 설립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썼고, 첨단과학산업단지 조성을 앞둔 농촌마을을 취재하였다. (광주과기원이 들어설) 논밭사이를 걸어가며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았던 당시가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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