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色의 유혹… 단풍에 물들고, 사케에 취하고, 온천에 적시고

입력 2018.11.10 03:00 | 수정 2018.11.12 14:30

일본 단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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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정원인 고라쿠엔.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도쿄돔의 3.5배 넓이를 자랑한다. 조명과 단풍, 연못의 조화가 신비롭다./일본정부관광국(JNTO) 제공
그래서 좋아하고 그러나 사랑한다. 일본 여행이 그렇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대자면 몇 개도 말할 수 있지만, 나쁜 남자에게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마음으로 이끌린다. 쌀쌀한 바람에 마음이 가을을 타기 시작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은 단풍이 절정을 치닫고 있지만, 일본 오카야마(岡山)현과 간사이(関西) 지방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단풍을 즐기다 밤에 지역 사케 한 잔과 온천욕을 하고 잠들면 에도 시대 쇼군이 부럽지 않다.

쇼군의 가을

"히메지성을 보지 않고 일본 성에 대해 논하지 마라." 혹자는 말한다. 흰색 외벽과 날개 모양의 지붕이 백로를 닮아 별명은 '백로성(白鷺城)'.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불린다. 붉고 노란 단풍이 든 가을이면 순백의 단아함에 화려함이 덧칠된다. 가을 단풍들 사이로 흰 벚꽃이 핀 진귀한 광경도 구경할 수 있다. 이상 기온 때문인가 했더니, 10월에 피는 '시월 벚꽃'이다. 일본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성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국보 등으로도 지정돼 있다.

히메지성은 다른 별명도 많다. '공주'라고도 불린다. 우아한 자태가 공주를 연상케도 하지만, 실제로도 공주와 연관이 있다.

1346년 이 지역을 지배하던 아카마쓰 사다노리가 남북조 시대에 지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지금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건 두 번의 증축을 통해서다. 한 번은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유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0년 이 성을 갖게 된 후, 두 번째는 1618년 에도시대 제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딸인 센히메를 혼다 다다토키와 결혼시킨 후 이 성을 지키라고 줬을 때다. 쇼군의 사위 혼다는 성을 정비해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히메지성은 '부전(不戰)의 성'으로도 불린다. 1945년 7월 미국의 히메지 대공습 때 성으로 떨어진 폭탄들이 불발되면서 소실을 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엔 드론으로 인한 파손이 잦아 드론 촬영이 금지돼 있다. 영화 '007 두 번 산다' 촬영지로도 사용됐다.

흰 성과 단풍의 화려함을 즐겼다면 이번에는 검은 성과 단풍의 세련됨을 느껴볼 차례. 오카야마현에 있는 오카야마성이다. 까마귀처럼 새까만 외관 때문에 '까마귀성'이라는 별명이 있다. 히메지성과 쌍둥이성으로도 불리는데, 실제로 형제가 두 성의 성주였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오카야마성은 공습을 피하지 못해 1945년 일부 소실된 후 1965년 재건됐다. 검은 기와와 검은 성벽, 금색 장식이 단풍과 어우러진 모습은 '멋지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오카야마성과 붙어 있는 고라쿠엔은 느긋하게 걸으면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명당이다.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다. 총 면적이 14만4000㎡로 도쿄돔의 약 3.5배 넓이다. 1687년 착공을 시작해 1700년 완공됐다.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 있는 가장 오래된 온천 마을 ‘아리마 온천’. 1300여 년의 역사만큼 오래된 단풍나무가 멋스럽다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 있는 가장 오래된 온천 마을 ‘아리마 온천’. 1300여 년의 역사만큼 오래된 단풍나무가 멋스럽다/일본정부관광국(JNTO) 제공
정원의 규모에 지칠 때면 오카야마 성 안의 카페 '오시로차야'에서 과일 파르페를 먹는 것도 색다른 기념. 일본 국민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 등장한 곳이다. 코난이 먹은 건 복숭아가 들어 있는 과일 파르페, 복숭아가 제철이 아닌 가을에는 포도 등 제철 과일을 올리고 그 밑에 복숭아 젤리를 깔아준다.

오카야마에는 두 개의 지붕을 합쳐 하나의 지붕으로 만든 독특한 구조를 가진 '기비쓰(吉備津) 신사'가 있다. 1425년에 재건돼 국보로 지정됐다. 400m 길이의 목조 회랑을 걸으며 양옆으로 단풍도 즐기고 인생 사진을 찍기도 좋다. 솥에 쌀을 넣어 가열했을 때 울리는 소리로 길흉을 점치는 의식 '나루카마'가 유명하다.

나루카마까진 아니더라도 200엔이면 점괘가 적힌 종이로 자신의 운을 시험해볼 수 있다. '대운'이 나오면 복권을 사러 가야 하고, '흉'이 나오면 신사에 걸어두고 나와야 화를 면한다고 한다.

쇼군 체험의 마지막은 온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1300년 전통의 온천 마을 '아리마(有馬) 온천'이 있다. 일본 3대 온천 중 하나다. 철과 염분 때문에 황갈색을 띠어 '금탕'이라고도 불린다. 온천 마을 중심가 개천의 황색 물과 붉은색 단풍이 이승이 아닌 것 같은 묘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

오하라 가문

이탈리아 피렌체에 메디치 가문이 있다면, 일본 구라시키(倉敷)에는 '오하라 가문'이 있다. 일본 개화기 모습을 축약한다면 이곳이지 않을까.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수로를 중심으로 18~19세기에 세워진 당시 마을 모습을 보존한 일본의 중요 전통 건축물 보호지구다. 외벽·안벽 등에 방화에 강한 스투코(도료의 일종)를 발라 흰색을 띠는 '누리야즈쿠리(塗家造)' 양식 건물들과 단풍, 수로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구라시키 미관지구에서 단풍을 즐기는 방법은 인력거·전통 배·걷기 등 세 가지다. 인력거를 타면 영어가 가능한 운전수가 미관지구 골목 골목을 달리며 설명해준다. 전통 배는 단풍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건물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맛이 있다. 운이 좋다면 전통 결혼식을 올린 후 전통 의상을 입고 배를 타러 온 신혼부부들도 만날 수 있다. 체력과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면 걸어서 둘러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구라시키에 왔다면 일본 최초 서양 미술관 '오하라 박물관'을 가보자. 모네의 '수련',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 등 서양 미술과 무나카타 시코 등 일본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 안에 있는 작품의 가치 때문에 미군도 폭격을 안 했다고 한다.

오하라 박물관은 구라시키 방직으로 부를 축적한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1930년에 일본인들에게 서양 미술을 소개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화가였던 고지마 도라지로가 장학금을 받으러 오하라에게 왔다가 친해진 후 유럽을 다니며 작품 활동도 하고 수집도 했다. 모네 작품은 오하라 박물관 개관에 맞춰 제작한 작품, 마티스 딸의 초상은 마티스 집을 방문해 딸 방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다.

일본 단풍놀이
구라시키 아이비스퀘어는 오하라의 옛 방적 공장을 재개발해 만든 복합 문화 시설이다. 구라시키 방적 기념관과 도예를 체험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유명한 구라시키 명소라면 '카페 유린안'. 100년 넘은 전통 가옥을 활용해 만든 게스트 하우스와 카페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멤버가 자전거 여행을 오면서 유명해졌다. 간장계란밥, 복숭아 주스, 우유 푸딩 등이 유명하다.

일본 배경의 서양식 건축의 매력적인 분위기를 좀 더 느끼고 싶다면 고베기타노이진칸이 제격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고베에 들어온 외국인들의 서양식 건축물과 동양식 단풍나무의 조화가 이색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 1903년에 지어진 독일 무역상의 저택과 미국 총영사 저택. 최근 왕자 부부가 방문하면서 일본인들에게도 필수 관광지가 됐다.

입구에 있는 스타벅스가 일본에서 제일 아름다운 스타벅스 건물로 유명하지만, 좀 더 이색적인 느낌을 내고 싶다면 1952년에 시내에 문을 연 '에비앙 카페'를 방문해보자. 지금은 희귀한 알코올 램프를 이용해 은발의 바리스타가 사이폰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해준다.

일본의 과거를 봤다면 현재와 미래도 둘러볼 차례. 고베 메리켄 파크는 1987년 해양 공원으로 조성됐다가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다시 재정비해 지금의 모습을 형성했다. 고베의 상징인 108m 높이의 '고베 포트 타워'와 돛을 형상화한 '고베 해양 박물관'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오사카의 '아베노 하루카스'에 오르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60층 높이는 300m. 하늘에서 즐기는 파인애플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유명하지만 굳이 사 먹을 정도는 아니다.

단풍놀이는 오카야마 공항으로 들어왔다가 간사이 공항으로 나간다면 3박 4일로 충분하다.

일본 단풍시기

오카야마 :11월 중~12월 초(11월 중·하순 절정)

간사이(오사카·교토·히메지·고베) 11월 중~12월 초(11월 말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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