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DR콩고 시민단체가 한국 선관위를 항의 방문했다는데…

조선일보
  • 김아사 기자
    입력 2018.11.10 03:00

    주말의 수사반장

    김용희 전 선관위 사무총장은 우리 선거 시스템을 알리는 과정에서 우수한 국내 기업을 도왔을 뿐이라고 얘기한다.
    김용희 전 선관위 사무총장은 우리 선거 시스템을 알리는 과정에서 우수한 국내 기업을 도왔을 뿐이라고 얘기한다./성형주 기자
    '공정'의 최후 보루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안팎이 시끄럽다. 장관급인 사무총장을 지낸 김용희씨가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는 퇴임 후 선관위 예산이 들어가는 단체의 수장이 된 후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감을 받은 업체가 독재 국가 DR콩고에 수출한 선거 관련 장비의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며, DR콩고 시민단체가 선관위를 항의 방문하는 일도 벌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김 전 사무총장을 선관위 상임위원에 임명하는 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 상임위원은 선관위 전체회의에 참석하는 9명의 구성원 중 유일한 상근직으로 선거 관련 사안의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4월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사표를 낸 것도 전체회의 위법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김 전 사무총장에 대한 검증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사무총장은 주변에 '조만간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이란 말을 하고 다녔다. 하나같이 이례적인 일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A-WEB과 미루시스템즈

    문제의 시작은 2013년 우리 선관위 주도로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란 비영리단체가 만들어지면서다. 105개국 111개 선거 기관이 참여해 있지만, 실제 자금줄 역할은 우리나라가 중심이다. 선관위가 매년 80억원가량을 지원한다. 김 전 사무총장이 선관위에 재직하던 시절 스스로 A-WEB 초대 사무총장이 됐고, 2016년 선관위 퇴임 후에도 직을 유지하고 있다.

    A-WEB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전자 투·개표 시스템 등과 관련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등을 한다. 국가 예산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A-WEB이 특정 기업이 장비 공급을 독점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선관위의 감사 결과 보고서 등에 따르면 '미루시스템즈'는 DR콩고에 1700억원대 터치스크린투표기(TVS) 공급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김 전 사무총장이 DR콩고 측에 미루시스템즈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신뢰할 수 있는 업체'라고 말하는 등 알선 행위를 했다고 한다. 프랑스어를 통역하던 A-WEB 직원에게는 미루시스템즈를 위해 입찰과 관련한 서류를 직접 번역하라고 시켰다. 이 직원이 이런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우려를 전했지만, 김 전 사무총장은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선거 정보통신기술 ODA 사업과 관련한 선거 장비 구입은 모두 '미루시스템즈'를 통해서만 이뤄졌다"고 했다. 선관위는 김 전 사무총장을 입찰 방해와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선관위도 처음엔 이런 일을 알지 못했다. 김씨가 선관위 사무총장을 맡고 있을 때까진 이 단체에 대한 감독권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서야 처음으로 보조금에 대한 감사를 했다. 비영리사단법인이던 A-WEB은 최근 국제기구 추진을 선언했다. 이 경우 선관위 예산·감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에 맞춰 사무총장의 임기도 연임 제한 규정을 없애 종신 집권이 가능하도록 바꿨다.

    지난 8월 DR콩고 시민단체 ‘프리덤 파이터’ 회원들이 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모습.
    지난 8월 DR콩고 시민단체 ‘프리덤 파이터’ 회원들이 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모습./중앙선관위
    선거 장비 조작 가능성

    후폭풍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9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에 DR콩고 시민단체인 '프리덤 파이터'가 항의 방문해 'DR콩고에 수출하기로 한 TVS를 선관위가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TVS는 선거 결과 데이터 조작이 가능하므로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DR콩고는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17년째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나라다. DR콩고 주재 유럽국 대사들은 권기창 한국 대사에게 '한국의 전자투개표기가 DR콩고 대선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취지의 우려를 전했다. 미루시스템즈는 지난해 이라크에 1500억원대 전자투개표 장비를 수출했지만, 올해 5월 있었던 이라크 총선은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돼 이라크 정부가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김용희 전 사무총장은 관련 의혹을 강하게 반박한다. 애초 수출할 만큼의 기술력을 가진 곳이 미루시스템즈밖에 없기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 등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김 전 사무총장은 "MS오피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 하나밖에 없어 그 회사에서 산 것을 일감 몰아주기라고 하느냐"며 "유럽 국가가 이번 일을 문제 삼는 것은 미루시스템즈와 경쟁하는 자국의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또 "DR콩고 측이 먼저 미루시스템즈의 장비에 매료돼 그 기업을 소개해 달라고 찾아온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이를 모른 체하는 게 국익에 맞느냐"고도 했다. 번역 등을 도우며 업체에 편의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국내 기업이 다음 입찰에서 자격 제한을 받지 않도록 요구하는 안을 번역하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선관위 안팎에선 이런 상황을 두고 상임위원직을 둔 전·현직 관계자들의 다툼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 전 사무총장과 그의 후임인 김대년 전 사무총장이 이번 상임위원직을 차지하기 위해 비방전을 펼치고 있다는 것. 선관위 9명 위원은 대통령 임명 3명,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으로 구성된다. 상임위원은 대통령 몫에 속한다. 이들은 선거와 관련된 굵직한 이슈의 위법을 가린다.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김용희 전 사무총장이 상임위원직에 앉게 되면 위원장을 능가하는 힘센 위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권이 특정 인물을 통해 선관위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 아닌지 염려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용희 전 사무총장은 "선관위를 나와 인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문제가 될 만한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며 "(내가) 상임위원직을 욕심 내는 다른 이들의 프레임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검찰 수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진실은 무엇일까. 김용희 전 사무총장 말대로 미루시스템즈가 유일한 기술력을 갖춘 회사란 것은 맞는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미루시스템즈가 관련 장비를 만드는 데 가장 높은 기술력을 보유했다"고 말했다. 검찰 내에서도 이런 부분 탓에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기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루시스템즈가 왜 독보적 기술력을 갖게 됐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이야기다. 이 업계에선 미리 정보를 듣고 해당 방향으로 개발을 하는 것이 계약을 맺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한다.

    특정 업체에 사전에 해당 국가가 원하는 장비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정보를 주고 긴급 입찰을 공고하면, 특혜를 받은 업체 외에는 참여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선관위 감사 결과에는 A-WEB 측이 여러 차례 미루시스템즈 모 부장에게 사업 제안 내용 등 입찰 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방식으로 특혜를 준 정황이 담겼다. 선관위 관계자는 "미루시스템즈 외 다른 업체가 경쟁이 안 되는 환경을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미루시스템즈가 처음 선관위 사업을 맡은 것은 2005년. 터치스크린 투표시스템 1292대, 명부 단말기 500대, 검표기 250대 개발에 에스원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참여하면서다. 김용희 전 사무총장이 선거국장, 전자선거추진단장 등 핵심 직책을 맡던 때다. 이후 수백억원대 계약을 계속해 체결하며 선관위 일의 상당량을 맡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김용희 전 사무총장을 선관위 상임위원에 임명하는 안을 검토하고, 검증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가 끝나지 않은 시점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의 모 실세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전직 선관위 고위 관계자는 "고도의 중립과 공정이 요구되는 선관위는 누구에게도 권력이 집중돼선 안 된다"며 "선거 기관에 대한 정치적, 정략적 접근은 되돌릴 수 없는 국가 재난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 DR콩고

    정식 명칭은 콩고민주공화국. 인접한 국가인 콩고공화국(콩고)과는 다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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