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야메 면허'로 해외 운전 20년, 한국서 면허 따 '왕초보' 스티커 붙였지만…

조선일보
  •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8.11.10 03:00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일러스트
    일러스트= 안병현
    한국으로 와서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차를 사서 고속도로를 마음껏 달려보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운전면허를 따야 했다.

    사실 운전은 할 수 있었다. 1996년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파견됐을 때, 선배였던 최동세 참사에게 운전을 배웠다. 물론 그분도 전문 운전사는 아니었다. 북한 외교관은 대부분 전문 운전 교육을 받지 못하고 현지 대사관에 나가 동료에게 대충 배워서 운전을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북한 외교관들이 교통사고를 내는 일이 적지 않다. 마구 몰다 보니 차도 빨리 닳았다.

    외교관이 상주국에서 면허도 없이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외교관에게 외교 특전과 특권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상주국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치지 않고 북한에서 가져온 운전면허증에 대사관 각서를 내면 운전 승인 문건을 발급해준다. 나라마다 좀 다른데 덴마크에서는 공식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고 영국에서는 '운전 허용 문건'을 발급해준다. 설사 교통사고를 내도 외교관은 치외법권이 적용된다. 보험 문서를 보자는 현지 경찰은 있어도 면허증을 보자는 경찰은 없다.

    나도 덴마크로 갈 때 북한에서 운전면허증을 만들어 갔다. 공식적으로는 북한에서도 시험을 쳐야 면허증이 나오지만 돈만 내면 시험 치지 않고도 면허증을 딸 수 있다. 운전대 한번 안 잡아보고도 면허를 딸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사회안전부(지금의 보안성)의 아는 사람을 통해 50달러를 찔러주고 면허증을 구했다. 지금은 가격이 올라 100달러는 줘야 한다.

    결국 운전면허 없이 덴마크, 스웨덴, 영국에서 12년 동안 운전했다. 다행히도 큰 사고는 내지 않았다. 평양에서는 몰래 두세 번 운전했다. 운전하려면 해당 차에 대한 운전 승인을 당 위원회에서 받아야 하는데 내가 기관 차를 직접 운전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고 운전을 시작했는데, 한국에 와서 쉰다섯에 운전면허 시험을 치게 됐다.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먼저 관련 책을 읽고 필기시험을 쳐야 한다고 했다. 서점에 가서 운전면허 기출 문제집을 사서 거의 사흘 동안 두문불출하고 공부했다. 몰랐던 교통 규정이 너무나도 많았다.

    기출 문제집을 보고 인터넷으로 실전 모의고사도 몇 번 풀었다. 열심히 공부한 덕에 한 번 만에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그다음 운전면허 학원에서 운전 연습을 일주일 동안 했다. 처음 강사와 함께 내 손으로 교육용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교육을 받아 보니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운전 조작법에 틀린 게 너무 많았다는 걸 알았다.

    한국은 학원에서 운전을 배울 수 있지만, 북에서는 공식 교육을 받으려면 당 조직의 추천을 받아 '운전사 학교'에 가야 한다. 1년 정도 다니고 졸업하면 운전기사 자격증을 받는다. 북한에서 운전사 학교에 가서 운전사가 되는 것은 일류 대학 들어가기만큼 어렵다. 그만큼 북한에서는 운전사라는 직업이 인기가 좋다. 운전사만 되면 자기의 생산 수단이 생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딸 가진 집에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과 택시 기사 총각 중 누구를 사위로 맞겠는가 하면, 열에 아홉은 택시 기사 총각을 사위로 맞겠다고 한다. 최고 명문인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해도 10년 안에 자기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지만, 택시 기사가 되면 몇 년 만에 집을 마련할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선 음주 운전 이슈가 뜨거운 듯하다. 음주 운전을 범죄 행위라고 하는데, 북에선 아직 음주 운전에 관대한 편이다. 운전자들이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냉면 먹으면서 소주 두 잔, 맥주 한 컵 정도는 기본으로 마신다. 과속, 음주, 불법 운전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북한 간부 중에 차 사고로 죽은 사람이 정말 많다.

    한국에서 차를 몰아보면 좋은 점도 많은데 매너는 아쉽다. 차선을 바꾸려고 방향 지시등을 켜도 비켜주지 않는다. 길을 잘 몰라 차 뒤에 '왕초보'라는 스티커를 붙였는데도 별 효력이 없었다. 한국 도로에서도 양보 문화가 좀 더 자리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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