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탄도미사일 같은 최소 10㎏짜리 大방어 배를 가르면 파도처럼 일어난 기름기가…

조선일보
  •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입력 2018.11.10 03:00

    [정동현의 pick] 방어회 편

    서울 여의도 '쿠마'

    방어는 본래 싼 생선이었다. 최소한 내가 살던 부산에서는 광어, 우럭보다 나은 취급을 못 받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등푸른생선 회를 즐겨 먹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등푸른생선 회도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유통이 발달했고 사람들 입맛도 변했다. 담백한 흰살생선뿐만 아니라 기름이 듬뿍 밴 뱃살의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방어 뱃살은 참치 뱃살만큼이나 지방이 많이 낀다. 트렌드에 잘 맞는 생선인 것이다. 덕분에 언제부턴가 '가을=전어' '겨울=방어'라는 공식이 등장했다.

    [정동현의 pick]
    소고기같이 부위가 나뉘고 소고기 마블링처럼 기름이 오른 방어(위 사진). 아래 사진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방어의 등살, 뱃살, 꼬리살, 위 뱃살, 가마살을 회로 뜬 것.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고수온의 영향으로 제주도에서나 잡히던 방어는 동해까지 올라왔다. 겨울이 되면 방어를 전문으로 한다는 광고판이 덕지덕지 붙는다. 그중 저녁 다섯 시부터 긴 줄 서는 서울 신촌 A 횟집은 특히 방어로 유명하다. 가성비 때문이다. 몇 만원에 밑반찬까지 해서 푸짐하게 한상 차려 나온다. 그러나 이 집에서 쓰는 방어는 크기가 작다. 방어처럼 기름기가 껴야 맛이 나는 생선은 커야 좋다. 그 이유로 방어는 1m 단위로 값이 크게 달라진다. 이 정도가 되면 '대방어'라는 이름이 붙고 기름기가 지층처럼 쌓이고 배꼽 살이니 하는 특수 부위가 손질 가능한 정도로 커진다. 좋은 방어를 먹자면 비싼 값을 내고 특급 호텔에 딸린 일식당에 가는 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기십만원을 낸 마당에 그 정도 품질은 어느 정도 당연하다. 노량진에 가는 것은 말리고 싶다. 프로를 상대로 아마추어는 승산이 없다.

    가야 할 곳은 여의도 충무빌딩 2층, 좁은 골목 맨 끝 '쿠마'. 그 작은 가게에 가장 큰 방어가 있다. 다른 회도 마찬가지지만 방어에 있어 최고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곳을 빼놓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 주인장은 '큰 놈'과 '자연산'에 확고한 신념이 있고 그 신념을 굽히는 법이 없다. 대물 생선을 보면 눈이 뒤집혀 어떻게든 싹쓸이한다.

    메뉴는 정해진 것이 없다. 메뉴는 주인장 마음대로 차려내는 7만원, 10만원 코스 딱 두 개만 있다. 겨울이 되면 방어는 거의 무조건 상에 올라오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최소 10㎏이 되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 살이 그득그득 올라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처럼 몸통이 부풀어 오른 녀석의 배를 가르면 하얀 해무가 낀 것처럼 기름기가 가득하다.

    [정동현의 pick]

    그 방어를 등살, 중뱃살, 대뱃살, 꼬리살, 가마살로 나눈다. 등살과 꼬리살은 기름이 적은 대신 육질이 탱탱하다. 뱃살은 돌배를 씹은 것처럼 즙이 입속에 퍼진다. 그리고 희미하게 남는 향기가 있다. 광어가 국화꽃 향이 난다면 방어는 희미한 박하 향이 난다. 광어는 찰밥처럼 이에 엉겨 붙지만 방어는 과일처럼 서걱거린다.

    주인장이 직접 담근 새우장은 방어 향을 해치지 않고 저 높이 끌어올린다. 모두 바다에서 낸 것이라 맛과 향이 어긋나지 않는다.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방어살 단면을 바라본다. 파도처럼 하얗게 일어난 기름기와 수평선 너머를 가득 메운 낙조처럼 새빨갛게 물든 살코기가 있다. 그 회 한 점에 몇백 겹 파도와 뜨겁고 차가운 시간이 엮여 있다. 그 모두가 한데 모여 내 안으로 들어온다. 겨울 바다 한 자락이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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