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단풍처럼… 인삼에도 '붉은 기운' 들었네

입력 2018.11.09 03:57

[그곳의 맛] [9] 진안 홍삼

전북 진안군 부귀면 26번 국도변에는 유명한 '홍삼 공장'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가정집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양옥집 입구에 '전통 증삼소'라는 안내문을 세워놨다. 이곳에서 송인생(53)씨가 전통 방식대로 인삼을 쪄서 홍삼을 만들어낸다. 지난달 19일 만난 송씨는 공장에 걸려 있는 가마솥을 가리켰다. "홍삼 맛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저 솥뚜껑입니다."

예부터 진안에선 가마솥에 시루를 얹어 인삼을 찐 다음 양지 바른 곳에 말려 홍삼을 만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솥뚜껑이 중요하다. 시연에 나선 송씨는 갓 딴 인삼을 뿌리가 상하지 않게 씻어 가마솥 찜통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솥뚜껑을 덮으려는 순간 송씨는 솥뚜껑을 뒤집어 찜통에 얹혔다. 뒤집힌 솥뚜껑에 찬물을 부어 찜통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불을 지피고 김이 발생한 시점부터 1~2시간 동안 솥뚜껑에 수시로 찬물을 갈아주는 과정에서 홍삼의 맛이 결정된다. 마냥 뜨거운 수증기로 장시간 삼을 찌면 인삼의 유효 성분이 증기와 함께 날아가면서 약성(藥性)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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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방식으로 만든 홍삼과 홍삼 엑기스. 오른쪽은 송화수 홍삼 명인이 가마솥에 인삼을 찌는 모습. 진안군
이 같은 진안 홍삼 제조법은 100년 가까이 빛을 보지 못했다. 1899년 홍삼이 국가사업이 되고, 1900년엔 일본 무역 회사인 미쓰이가 홍삼 사업권에 대한 독점권을 위탁받았다. 1910년 이후엔 조선총독부가 국가 기관에서만 홍삼을 제조·판매하도록 하는 전매제를 실시했다. 이후 1996년 국가 전매제가 폐지될 때까지 민간에서 만든 홍삼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고사 위기에 처한 진안 홍삼의 명맥을 살린 인물이 송인생씨의 부친인 송화수(85) 명인이다. 그는 3대째 내려온 전통 방식을 응용해 홍삼을 만들었다. 아무나 홍삼을 만들 수 없던 때라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정용으로 소량 생산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송 명인은 국가 전매제가 폐지되자 자신의 기술을 주변에 전파했다. 그의 영향을 받아 진안은 홍삼의 고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5년 전국 최초로 홍삼특구로 지정됐고, 지난해 312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장을 이뤄냈다.

진안 홍삼이 유명해진 것은 기후의 힘이 컸다. 홍삼의 원료인 인삼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를 좋아한다. 연평균 기온 13.8도, 여름철 평균 기온은 20~25도, 연평균 강수량 1200㎜ 정도에서 잘 자란다. 평균 고도 400m 이상의 산간 고랭지에 있는 진안은 이 조건에 잘 맞는다. 일교차가 커 인삼 생육 기간이 60일 정도 더 길다. 이렇게 자란 진안 인삼은 사포닌 함량이 많고 내부 조직이 단단해 향을 오래 간직한다.

질 좋은 인삼은 최상품 홍삼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국가 전매제가 폐지되면서 진안엔 홍삼 가공 업체가 잇따라 들어섰다. 2009년 15개사에서 지난해 110개사까지 늘었다. 2009년 267t이었던 홍삼 생산량도 2017년엔 560t으로 늘었다. 지난해 진안 홍삼 생산량은 전국의 35%를 차지했으며 이 중 30%는 미국·중국 등으로 수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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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 용담호 인근에 인삼밭이 펼쳐져 있다. 용담호는 진안군의 1개 읍, 5개 면을 수몰시켜 만든 거대한 담수호로 진안의 관광 명소다. 정천면~용담면~용담댐으로 이어지는 수변 도로는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다. 평균 고도 400m 이상의 산간 고랭지에 있는 진안에선 기후 조건이 좋아 질 좋은 인삼이 난다. /진안군

진안 홍삼은 전문 시험·검사 기관인 진안홍삼연구소의 검사를 거친다. 홍삼의 주요 성분인 사포닌이 10종 이상 들어 있어야 하고, 농약이 검출되지 않아야 품질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지난 2009년 진안읍 홍삼한방로 5406㎡ 부지에 2층 건물로 세워진 진안홍삼연구소엔 전문 인력 20여명이 홍삼 연구를 하고 관련 제품을 개발한다. 홍삼 액상 차, 홍삼 에너지 바, 홍삼 다이어트 선식, 홍삼 한방 화장품 등의 제품을 개발했고 이 중 일부 제품은 시판되고 있다.

진안군은 매해 10월이면 홍삼축제를 연다. 홍삼 관련 프로그램과 진안고원 문화 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지난해 26만5700여명이 다녀가며 155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 지난달 21일 막을 내린 올해 진안홍삼축제엔 25만여명의 관광객이 60여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겼다.

홍삼을 주제로 꾸민 '진안 홍삼 스파'도 인기다. 지난 2009년 문을 연 홍삼 스파에선 홍삼 팩을 하고 홍삼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 홍삼·한방 성분과 음양오행의 원리를 접목한 '태극 버블 센스 테라피'에선 따뜻하게 데워진 돌의자에 앉아 목까지 차오르는 홍삼 거품으로 전신 마사지를 할 수 있다. 부력(浮力) 장비를 착용하고 수영장처럼 너른 풀의 물 위에 누운 채 수중 스피커에서 들려 오는 음악을 듣는 '사운드 플로팅(floating)'도 인기다. 옥상에 있는 하늘 정원에선 마이산을 바라보며 노천 스파를 즐길 수도 있다. 이항로 진안군수는 "홍삼의 고장 진안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최적의 힐링 여행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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