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영장 속엔, 직권남용 혐의만 100개

입력 2018.11.09 03:01

그중 70개가 검토 보고서 작성 지시, 나머지는 재판 개입 문제
법조계 "보고서 작성은 업무 일환… 부당한 지시로 보기 어렵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지난달 27일 구속된 임종헌〈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구속 이후 검찰 수사에 반발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가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게 적용된 직권남용죄 때문이다. 법 적용이 잘못됐는데도 부당하게 구속됐다는 것이다. 그는 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임 전 차장 구속영장에 담긴 직권남용 '범죄 사실'은 1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동안 그의 범죄 사실이 30개 정도라고 해왔다. 사건별로 계산하면 그렇지만, 임 전 차장이 위법한 지시를 내린 사람과 지시 내용을 세부적으로 따지면 100개에 이른다는 것이다. 검찰이 사실상 탈탈 턴 것이다. 직권남용을 이 정도로 적용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검찰 주장이 맞는다면 직권남용 범죄의 '결정판'인 셈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검찰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부하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그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한다. 그런데 임 전 차장에게 이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주요 혐의 정리 표
법원과 검찰 등에 따르면 임 전 처장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범죄 사실 100개 중 70개 정도는 그가 행정처 심의관(판사)들에게 법원 관련 사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만들게 지시한 것이라고 한다. 검토 보고서 중엔 2013년 대법원에 재상고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 2014년 통진당 해산 이후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관련 사건 등 재판과 관련한 내용이 상당수 담겨 있다. 직권남용죄가 되려면 상관이 부하 공무원에게 '위법한 일'을 하게 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 검찰은 재판 지원 업무를 하는 행정처 심의관이 재판 자체를 분석한 보고서를 쓰는 것은 법적 직무 밖의 일로 보고 있다. 이런 일을 시킨 임 전 차장이 위법한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행정처 차장이 심의관에게 검토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는 부분을 직권남용으로 걸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더 우세하다. 법원조직법은 행정처장과 차장 밑에 심의관을 둬 연구·조사, 심사·평가·홍보 등의 업무를 보좌하도록 하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행정처 차장은 국회 등에 나가 주요 사건의 판결 취지 등을 설명해야 하는 자리"라며 "이 때문에 행정처 심의관들은 예전부터 주요 사건 분석을 해왔고 이는 심의관들의 적법한 '연구·조사' 활동으로 볼 수 있어 부당한 지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검찰이 행정처의 거의 모든 지시를 직권남용으로 보고 있는데 이런 식이면 웬만한 공무원은 다 직권남용범(犯)이 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행정처 심의관들이 특정 성향 판사 모임의 동향과 일부 판사의 성향을 정리한 내부 문건을 만든 것도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심의관들의 업무와 무관한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원로 변호사는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조사 목적이었다면 법적으로 문제 삼긴 어렵다"고 했다.

검찰이 임 전 차장이 재판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논란 가능성이 크다. 그의 직권남용 범죄 사실 100개 중 30개가 이에 해당한다. 통진당 재판 등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처 차장은 법적으로 재판 지원 업무를 할 뿐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은 없다. 직권이 없기 때문에 남용도 성립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이 부분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하려면 해당 사건을 맡은 판사가 임 전 차장의 뜻에 맞게 선고를 내렸다는 점이 증명돼야 하는데 아직 이런 진술을 한 판사는 없다고 한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임 전 차장이 2016년 당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서 뇌물을 받은 김수천 부장판사 등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을 받던 현직 판사 8명의 영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차장이 이 판사 가족들의 인적 사항이 담긴 리스트를 영장전담판사들에게 전달해 '검찰이 판사 가족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 등을 청구하면 기각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 전 차장 측은 "행정처 차장은 일선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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