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56명 잡월드에 '340명 직접고용' 압박하는 민노총

입력 2018.11.09 03:01

청소년 직업체험 공간이 '비정규직 투쟁' 최전선으로

'쾅' 하고 누군가 밖에서 사무실 문을 발로 찼다. 문짝을 덜컹덜컹 흔들었다.

7일 오전 11시 10분, 경기 성남시 한국잡월드. 어린이·청소년 직업 체험 전시관을 운영하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이다. 민주노총 소속 이 회사 비정규직 노조원 등 60여명이 체험관 내 사무동 출입구를 열었다. 원래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는 공간이지만 노조원들이 유리문을 세게 흔들자 그냥 열렸다. 노조원들이 사무실 앞에 몰려와 문을 발로 차며 "당장 나오라"고 고함쳤다.

당시 사무실 안에는 행정·사무 담당 정규직 30여명이 있었다. 문짝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선 정규직 직원들이 떨고, 다른 쪽에선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복도에 앉아 투쟁가를 불렀다.

민주노총 소속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조원 60여명이 8일 경기 성남에 있는 한국잡월드 체험관 내 사무동 일부 복도를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고용부 산하인 잡월드가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를 만들어 채용하려 하자 이에 반발해 이틀째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조원 60여명이 8일 경기 성남에 있는 한국잡월드 체험관 내 사무동 일부 복도를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고용부 산하인 잡월드가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를 만들어 채용하려 하자 이에 반발해 이틀째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홈페이지

혹시 문이 열릴까 봐 안에 있던 정규직들이 문 앞에 의자와 책상을 쌓았다. 그중엔 여직원이 20명쯤 됐는데, 임신한 여성도 있었다. 현장에 있던 정규직이 "화장실 갈 엄두도 안 났다"고 했다.

이들은 오후 3시 45분까지 사무실 안에서 버티다, 경찰 보호를 받으며 빠져나왔다. 이 모든 일이 어린이·청소년이 하루 평균 2600명씩 찾는 직업 체험관 한쪽에서 대낮에 벌어졌다. 8일도 밤까지 점거 농성이 계속됐다. 노조원들은 취재하러 온 본지 사진기자를 에워싸고 "왜 허락도 없이 찍느냐"며 이미 찍은 사진을 지우게 했다.

◇어린이 직업 체험공간에 울려 퍼진 투쟁

잡월드는 행정·사무 담당 정규직 56명과 비정규직 338명으로 구성돼 있다. 비정규직 중에선 직업체험강사가 275명으로 가장 많다. 정부 방침에 따라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벌어졌다.

잡월드는 지난 4월 사측 9명, 비정규직 측 9명, 전문가 2명으로 노·사·전문가협의체를 꾸리고, '잡월드가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를 만들어 그쪽 정규직으로 받자'고 결정했다. 비정규직 대표 9명 중 7명이 찬성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반전됐다. 민노총 산하 비정규직 노조원 160여명이 "지금도 용역업체 소속인데, 잡월드 자회사에 들어가 봤자 뭐가 다르냐"고 반발했다. 나머지 180여명은 "그래도 고용이 안정되고 보수도 오르니(15%)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여기가 투쟁의 최전선"

현재 잡월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둘러싼 싸움의 최전선이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민노총이 전략적으로 잡월드를 투쟁 대상으로 삼았다"고 본다. 민노총은 "고용부가 모범을 보이긴커녕 고용부 산하기관에서 '가짜 정규직(자회사 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며 고용부를 코너로 몰고 있다. 한 민노총 간부는 집회 도중 "잡월드만 뚫으면, 나머지 기관도 다 뚫을 수 있다"고 했다. 잡월드에서 민노총 의사를 관철하면, 한국도로공사·한국마사회처럼 비슷한 협상을 진행 중인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이길 것이란 전략이다.

노조는 지난 7월 잡월드 앞과 청와대 앞에 각각 천막을 쳤다. 9월에는 '게릴라 파업'에 들어갔다. 직업체험강사가 학생들을 안내하다 갑자기 파업하러 간 일도 있다. 지난달 19일 전면 파업으로 전환하고, 일주일 뒤 고용부 경기지청을 점거했다. 이번 잡월드 점거 농성까지 합쳐, 공공기관 청사 두 곳을 동시에 점거 중이다.

정부는 고민이 깊다. 고용부는 지난 7월 "노·사·전문가 협의를 거쳐 기관별로 정규직화 방식을 결정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냈다. 노조가 강경책을 쓴다고 이제 와서 정부가 산하기관 일에 개입했다간 비판이 치솟을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용부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대량 실직 벌어질라

점거 농성 와중에도 잡월드에선 자회사 채용 지원이 진행됐다. 전체 비정규직 중 49명은 이미 절차를 마쳐 자회사 정규직이 됐다. 나머지 289명 중 149명이 지원 마감 시점인 이날 오후 6시까지 원서를 냈다. 나머지 140명은 대부분 민노총 조합원이다. 이들은 '조합원끼리 배신하지 말자. 지원 거부를 맹세하자'는 취지로 대형 현수막에 손도장을 찍었다.

잡월드 관계자는 "이들이 끝내 지원하지 않으면 공개 채용으로 공석을 메울 예정"이라고 했다. 자회사 입사를 거부한 이들은 올해 12월 31일 계약 기간 만료와 함께 일자리를 잃는다. 노조와 잡월드는 이날 밤늦게까지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앞으로 이들이 외부에서 '복직 투쟁'을 벌이면서 갈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

☞한국잡월드

고용부 산하기관으로, 어린이·청소년이 주로 찾는 직업 체험 전시관을 운영 중이다. 하루 평균 2600~2700명이 다녀간다. 지난 4월 노·사·전문가 협의체에서 기존 비정규직들을 자(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데 합의했지만, 비정규직 노조가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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