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당 '펠로시 딜레마'

조선일보
  • 정시행 기자
    입력 2018.11.09 03:01

    두번째 하원 의장 유력… 16년 동안 민주당권 장악
    자금 모금·협상력 탁월하지만 "세대 교체·변화 막는 옛 인물"

    미국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탈환하는 '절반의 승리'를 이룬 뒤 오히려 몸살을 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공에도 농촌·백인 남성 표심을 잡지 못하고,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다는 한계가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 우려는 당내 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 바로 민주당 1인자인 낸시 펠로시(78) 하원 원내대표다.

    펠로시는 선거 이튿날인 7일(현지 시각)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기 하원 의장직 재도전을 밝혔다. 하원 다수당의 원내대표가 당내 추대를 거쳐 하원 의장을 맡는 게 관례다. 그는 2002년부터 하원 원내대표를 16년 맡아왔으며 2007~2010년 민주당이 다수당일 때 하원 의장을 지낸 바 있다. 미 의회사 최초의, 유일한 여성 의장 기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는 명예로운 자리에 잘 어울린다"면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원 의장은 대통령 유고 시 상원 의장(부통령)에 이어 대통령직 승계 서열 2위여서 여당의 승인도 중요하다.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7일(현지 시각) 워싱턴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분열된 국가 통합을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펠로시는 이날 2007~2010년에 이어 또 차기 하원 의장직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7일(현지 시각) 워싱턴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분열된 국가 통합을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펠로시는 이날 2007~2010년에 이어 또 차기 하원 의장직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그런데 민주당 내 상황이 녹록지 않다.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당 의원 중 약 3분의 1이 펠로시 하원 의장 복귀에 반대하고 있다. 너무 오래 당 간판을 맡아 여론 피로감이 크다는 것이다. 최근 정치인 호감도 조사에서 펠로시는 비호감도가 53~54%로 트럼프와 비슷하게 높은 반면 호감도는 27%로 트럼프(42%)에게 뒤졌다. 이번에 "펠로시 하원 의장만은 막겠다"고 공약하고 당선된 민주당 의원이 십수 명이고, 초선 중 20여 명이 성명을 내 "민주당은 세대 교체가 필요하다" "펠로시는 노욕(老慾)을 버리라"고 요구했다.

    하원 의장 선거가 표 대결로 갈 경우 민주당 반란표로 과반(218표)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트럼프는 7일 펠로시를 향해 "당내 말 안 듣는 애들이 있으면 공화당에서 몇 표 빌려주겠다"고 했다. 대놓고 야당 내분을 조롱한 것이다.

    펠로시는 연공서열과 당의 입법·선거·자금 기여를 토대로 대의원이 지도부를 비공개 선출하는 민주당에서 16년간 당권을 쥔 인물이다. 지난 2010년 당의 하원 패배와 2016년 대선 패배 때 용퇴설이 나와도 버텨냈다. 양당 통틀어 최근 60여 년간 최장기 집권 기록이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1987년부터 내리 17선(選)을 한 그는 법안 추진력과 협상력, 방대한 인맥을 자랑한다. 진보 좌파면서 온화한 이미지다. 당 중간선거 자금 중 절반을 펠로시가 끌어왔을 정도로 모금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뭐가 문제일까. 일단 펠로시의 나이다. 본인은 78세이고, 측근인 원내총무·부원내대표는 각각 75·74세다. 펠로시가 추인할 하원 상임위원장직도 70~80대 다선 의원으로 채워질 전망이다. 한 50대 민주당 의원은 "내가 '노른자 상임위'인 금융위원장이 될 순번을 계산해보니 184년 기다려야 하더라"고 했다. 공화당도 당내 주요직에 임기 제한을 도입했고 40대 하원 의장(폴 라이언)도 배출했는데, 진보 정당이 변화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언론들 시각도 엇갈린다. 월간 애틀랜틱은 "가뜩이나 민주당 차기 주자군이 조 바이든(75), 버니 샌더스(77), 엘리자베스 워런(69) 등으로 노회한 상태"라며 "펠로시는 민심에 둔감하고 기득권만 챙기는 워싱턴 구악(舊惡) 정치의 상징이 됐다"고 했다. 주간 이코노미스트도 '충분히 했잖아, 낸시'란 기사에서 "젊고 파격적인 인물이 의회에 입성해도 민주당 말단에 머무르다 이름을 알리지 못해 재선도 실패하곤 한다. 반면 귀족 지도부는 도시·진보 엘리트의 지지에 안주해 농촌·노동자 계층에 다가서지 않는다"고 짚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펠로시 고령·장기집권 논란은 유독 여성에게 가혹한 공화당·남성의 논리일 수 있다"며 "오바마 케어·이민자 보호 등 민주당 핵심 정책을 지켜내려면 노련한 인물을 다시 세우는 게 낫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7일 칼럼에서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블루 웨이브(wave·파도)를 선언했지만 결과는 잔물결(ripple)에 불과했다"면서 자성과 쇄신을 주문했는데, 그중 하나가 '펠로시 하원 의장 뽑지 말라'는 것이었다. 같은 날 사설은 "대안이 없다면 펠로시를 일단 추대하되, 2020년 대선 전 새 인물을 키워놓고 물러날 것을 약속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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