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태클' 한번 걸겠다더니… '청와대와 市場' 사이 줄타다 내려오나

조선일보
  • 이진석 논설위원
    입력 2018.11.08 03:14

    이진석 논설위원이 본 김동연 부총리의 17개월

    이진석 논설위원
    이진석 논설위원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흙수저' 성공 신화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세 동생과 서울 청계천 판잣집, 경기도 광주대단지 천막촌을 전전했다. 덕수상고를 다니다 1975년 한국신탁은행(현재 하나은행)에 취직한 뒤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동시 합격했다. 그는 "당시 은행원, 대학생, 고시생 1인 3역을 했다. 세상 누구를 지금 내 자리에 데려 놓아도 나보다 더 열심히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미국 정부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박근혜 정부 국무조정실장에서 물러난 뒤 아주대 총장을 지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작년 6월 취임 이후 줄곧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왔다. 청와대가 주도한 '소득 주도 성장'과 경제 논리 사이에서 비틀거렸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 정책실 등과 공개되지 않은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 부총리가 현 정부를 위해 전력투구하지 않는다는 의심까지 했다고 한다.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청와대 회의에서 내년 예산안 증가율을 10년 만에 가장 높은 9.7%로 정했는데 기재부가 낮추려고 하면서 잡음이 났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 부총리도 참석했고, 다들 그 숫자로 알고 회의를 끝냈는데 며칠 뒤에 기재부에서 0.2%포인트 정도 낮춘 숫자를 가져왔다"고 했다. 결국 원래대로 9.7%로 정했지만 청와대 안팎에서는 "부총리가 예산 증가율을 조금이라도 낮추려 했다는 알리바이를 남기려고 이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정책실장과 불화, '2인 3각' 무너져

    김 부총리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불편한 관계였다. 정부 경제팀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한 정부 관계자는 "두 사람이 주요 현안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발표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 잃게 됐다"고 말했다. 특별한 계기나 이유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핵심 인사는 "부총리는 모든 항목에 대해 꼼꼼하게 교과서를 쓰려는 사람이고, 실장은 사안별로 맞다, 틀리다 판결문을 쓰려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흙수저 성공 신화의 김 부총리와 명문가 출신으로 경기고를 나와 미국 유학 후 교수 생활을 한 장 실장의 성장 배경이 너무 달랐던 것이 원인이라는 말도 있다. 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성장 배경 차이도 컸고, 관료와 학자라는 두 사람의 DNA가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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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형주 기자
    김 부총리는 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시어머니가 너무 많다"면서 청와대 간섭을 줄여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장 실장과의 거리를 두려고 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 부총리는 장 실장과 함께 '투 톱(Two Top)'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2인 3각'이 불가능했던 근본 원인은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한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김 부총리는 소득 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속도 조절론'을 꺼냈지만, 장 실장은 "소득 주도 성장을 흔들림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 관계자는 "부총리가 고용 악화 등 위기 상황에서 소득 주도 성장을 지키는 것보다 본인의 이미지나 평판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이 청와대 내부에서 많았다"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장 실장이나 청와대에서 부총리를 크게 오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총리는 몸이 상할 정도로 노심초사했다"고 말했다.

    실세 장관에 사면초가(四面楚歌)

    김 부총리는 '김동연 패싱(passing· 건너뛰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그는 "저성장 고착화, 일자리, 부동산, 저출산에 대해 '태클'을 하고 싶다"면서 강한 정책 추진력을 발휘해보려고 했지만, 노조와 시민단체 등을 우선하는 여당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대선 캠프 출신도 아니고, 현 정부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부총리로서는 역부족을 절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주 전 고용노동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여당 출신 장관들도 상대하기 버거웠다고 기재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부동산 대책 등에서 부총리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법인세 인상의 경우 김 부총리가 "신중해야 할 문제"라고 했지만, 여당 주도로 추진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부총리가 정책을 주도할 환경이 아니었다. 부총리도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등장은 화려, 성적은 별로… 김동연도 '첫 경제사령탑 징크스'

    역대 정부 첫 경제사령탑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경제개발이 시작된 박정희 정부 이후 역대 정부 첫 경제 수장들의 재임 중 성장률을 비교해보면 대부분 해당 정부 평균 성장률보다 낮았다. 노태우 정부 나웅배 부총리만 재임 중 성장률이 11.9%로 평균(9.1%)보다 높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올해 당초 예상보다 낮은 2.7%대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한 전직 경제 부처 장관은 "지지율이 높은 정권 초에 부총리가 일하기 쉬울 것 같지만, 청와대에 휘둘리기 쉬워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첫 사령탑들보다 2대 사령탑이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외는 노태우·박근혜 정부 두 번뿐이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세 번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성장률이 올해(2.7% 예상)보다 낮은 2.6%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임자가 누구든 김 부총리보다 더 힘겨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 고용 감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경제정책 실험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도 "소득 주도 성장은 포기한 적 없고, 포기할 수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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