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향연] 우리의 행복한 아이들을 위하여

조선일보
  • 권지예 소설가
    입력 2018.11.08 03:11

    유치원 비리·아동 학대 사건으로 자식 맡기는 부모들 불안 호소
    아이들 건강과 행복 위해서는 돌보는 보모·교사부터 행복해야
    교육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 모두가 행복한 시스템 고민할 때

    권지예 소설가
    권지예 소설가
    요즘 사립 유치원 비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사립 유치원 원장이 명품이나 성인용품을 사들이며 정부 지원금을 부정적으로 유용한 데서 촉발되었다. 사실 사립 유치원 원장은 교육자이면서 개인 사업자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정체성이 있다. 그러나 특히 유아 교육은 공교육 측면이 강하다 보니, 국민이 이런 교육자들의 자질이나 인성에 공분하고 있는 것이리라. 최근에는 교육부 장관이 투명한 시스템 정비와 국공립 유치원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어리고 연약한 자식을 맡겨야 하는 부모에게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내 아이들을 기르던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프랑스에서 '살림 밑천'으로 둘째를 낳았다. 나는 가난한 유학생이었는데, 아기를 낳으면 생활 보조금이 나오고 온 식구의 의료보험이 공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 출산은 양면의 칼이었다. 두 아이를 돌보며 공부하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프랑스는 학생이나 일하는 엄마는 출생 3개월부터 아기를 '크래슈'라는 탁아소에 맡길 수 있었다. 프랑스의 유치원은 거의 100% 국공립이고, 첫애는 국공립 유치원에 다녔다. 하지만 사립 탁아소는 비용이 꽤 비쌌고, 무료인 국공립 탁아소는 경쟁이 치열했다. 지원서를 넣었지만 붙지 못했다. 절박한 나는 집 근처 공립 탁아소에 계속 편지를 써 보냈다. 원장의 인터뷰 요청이 왔다.

    둘째가 첫돌을 앞둔 비바람 부는 1월 어느 날, 고물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원장을 만났다. 아이와 나는 가능하면 불쌍하게 보이려고 초라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우리 모자는 감기까지 심하게 걸린 상태였다. 원장은 내가 편지를 계속 보냈던 유학생이란 걸 알고 내 사정을 딱하게 여겼다. 나는 아이 때문에 유급할 처지를 호소하며 눈물을 쏟았다. 물론 슬픈 연기를 전략적으로 약간 할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신들린 대사와 눈물이 펑펑 나와 줄 줄 몰랐다. 그만큼 힘들고 절박했던가. 게다가 아들놈은 계속 자지러질 듯한 기침으로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원장의 허가가 떨어졌다.

    [인문의 향연] 우리의 행복한 아이들을 위하여
    /일러스트=이철원
    그 뒤 잠자는 시간을 빼고, 집보다 공립 탁아소와 공립 유치원에서 더 많이 지낸 아이는, 7할은 프랑스에서 키운 거나 마찬가지다. 나는 정말 보모와 교사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무엇보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그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느꼈고, 국가에서 책임지는 공교육의 철학과 교육 방법에 깊이 공감했다. 아이의 개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억압하지 않는, 열린 교육을 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혀도 안 돌아가는 서너 살 아이가 영어를 외우고, 피아노 학원에서는 오선지에 음표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100번 쓰는 숙제부터 내주는 한국 유아 교육의 현장. 어린이집 재롱 잔치에서 일사불란하게 연습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춤을 선보이고, 마지막 합창곡으로 이문세의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을 부르는 걸 보며 실소를 머금었노라고 한 지인은 소감을 말했다.

    겨우 너덧 살짜리 아이들이 "그대가 마음먹은 대로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우~후 슬픔보단 기쁨이 많은 걸 알게 될 거야 인생이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중요해" 하는 노래를 앵무새처럼 부르는 걸 상상하면, 웃기면서 슬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 나는 매우 흥미롭고 공포스러운 소설을 읽었다. 2016년 공쿠르상(賞)을 받은 레일라 슬리마니의 소설 '달콤한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장난감 더미 위에 부유하듯 너부러진 아기를 회색 커버 안에 누이고 뼈마디가 비틀어진 몸 위로 지퍼를 채웠다. 여자아이는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아직 살아있었다.'

    엄마 미리암은 변호사 경력이 단절되는 게 두려워 남편과 고심해서 아이들을 돌봐줄 보모를 구한다. 연약한 인상의 루이즈는 완벽한 보모였다. 육아는 물론 살림까지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소설은 아무도 모르는, 안개에 감싸인 그녀의 불행한 삶의 편린들을 불러낸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녀를 잘 모른다. 다만 명확한 것은, 그녀가 돌보던 두 아이를 살해했다는 사실이다.

    집안 보모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의 아동 학대가 심심찮게 뉴스에 나오곤 한다. 아마도 부모들의 가장 큰 바람은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는 것이리라. 무엇보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한 교육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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