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태극기 애국 세력 앞에 놓인 선택

조선일보
  • 김창균 논설주간
    입력 2018.11.08 03:17

    한국당서 불거진 '박근혜 토론' "탄핵 옳았냐"로 가면 집안 싸움 되며 文 정권 돕는 격
    '보수 위한 투쟁' 대의 어긋나
    박 전 대통령 처지 정 억울하면 사법 처리 정당성 따져 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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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균 논설주간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원내대표 선거가 있는 연말까지 박근혜 끝장 토론은 없다"고 했다. 박근혜 끝장 토론은 '탄핵이 옳았냐'를 다시 한 번 따져보자는 것이다. 말이 토론이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16년 12월 9일 탄핵 표결 때 찬반 구도대로 돌아가 으르렁댈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그래서 덮어두고 해를 넘기자는 것이다.

    '탄핵이 옳았냐' 논쟁이 점화되면 결국 '배신자 낙인찍기'로 이어진다.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이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 번 방영했던 드라마다. 그 총선은 당시 야당이 문재인당과 안철수당으로 분열되면서 집권 여당이 질래야 질 수 없는 판이 짜여 있었다. 300석 중 180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와 친박 주류가 야당 대신 당내 배신자를 주적으로 삼으면서 스스로 무덤을 팠다. 탄핵 찬반 싸움이 벌어지면 2020년 총선도 4년 전 드라마의 재판이 된다. 총선만 망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권 초기 풀이 죽었던 보수 진영에 얼마 전부터 생기가 돌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손대는 일마다 죽을 쑤는 것을 보니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적진 사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신명나서 아군 진지 무너지는 것은 눈치 못 채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 "탄핵이 옳았냐"는 논쟁이 벌어지면 차기 대선주자들도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탄핵 심판을 앞둔 2017년 신년 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은 82%, 반대는 12%였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고만고만했다. 탄핵에 대한 국민 생각이 그새 크게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다. 차기 주자가 "탄핵은 잘못이었다"고 하면 80% 국민 눈 밖에 나고, "탄핵이 옳았다"고 하면 친박 핵심 지지층과 척진다. 친박에 찍히면 보수 진영 대선 후보가 되기 어렵지만 친박의 점지를 받아 보수 대표가 되면 대선에서 이기기 힘들다.

    친박 지지층은 보수 중에서도 성골 보수다. 주말마다 태극기 들고 광화문을 누비는 열정은 여느 유권자 10명을 상대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투표장에서는 똑같은 한 표일 뿐이다. 친박들의 '보수 수호 투쟁'이 결과적으로 나락에 빠져드는 문재인 정권의 안전망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정치판이 지금 그렇게 짜여 가고 있다. 문재인 지지층은 친박들이 보수 진영 정치인들에게 탄핵 찬반을 물으며 배신자 색출 작업을 벌이는 데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고 있다.

    태극기 애국 세력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박 전 대통령을 보수의 희망으로 삼아 지지해 왔다. 그랬던 대상이 5년 대통령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청와대에서 쫓겨나 영어(囹圄)의 몸까지 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분노는 잠시 덮어둔다고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에너지가 어떤 출구로 분출되는 데에 따라 보수 진영의 명운이 좌우된다.

    박 전 대통령의 처지가 너무 억울해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면 문제 삼을 대상이 탄핵만 있는 게 아니다. 사법 처리가 온당하게 진행되고 있느냐도 반드시 따져 물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이란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국정에 대한 판단을 구한 것은 그에게 대통령직을 맡겼던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박 전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도록 기다려 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60대 후반에 접어든 박 전 대통령이 종신형이나 다름없는 처벌을 받아야 할 만큼 형사적인 책임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른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탄핵을 문제 삼다 보면 국회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한국당 의원들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반면 형사처벌에 대한 시시비비는 사법기구 전체를 장악해서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 현 정권과의 문제가 된다. 탄핵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전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사안이다. 설사 그 판단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헌정 질서를 중시해 온 보수 진영이 문제 삼기는 힘들다. 반면 형사처벌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이다.

    탄핵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결국 보수 진영 내란으로 귀결된다. 그 싸움을 부추기는 몇몇 친박 정치인들에게는 한국당에 남은 한 줌 텃밭 위에서 자기 정치 생명을 연명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크게 보면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 승리를 문재인 정권에 갖다 바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매달려 집안 싸움을 할 것이냐, 아니면 도를 넘은 적폐 청산을 문제 삼으며 문재인 정권과 멱살잡이를 할 것이냐. 태극기 애국 세력 앞에 그 선택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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