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사물극장] [71] 자코메티의 '신발과 양말'

조선일보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입력 2018.11.08 03:09

    군더더기를 깎아낸 사람의 전신상(全身像)을 처음 보았을 때 고독하다고 느꼈다. 막대기같이 길쭉한 그 형해(形骸)는 선의나 불의조차 초월한 인간 본질에 가까워 보였다. 존재의 부피와 무게를 거부한 조상(彫像)으로 20세기 최고 조각가 반열에 오른 이는 스위스 출신의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 ~1966)다.

    [장석주의 사물극장] [71] 자코메티의 '신발과 양말'
    아버지 조반니 자코메티도 화가였다. 아버지의 복제판 화집을 베끼면서 그림의 세계로 빠져든 자코메티는 제네바 미술학교를 거쳐 미술공예학교로 옮겨 수업을 들었다. 1922년 1월 9일 파리에 도착한 그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세례를 받으며 '창조적 흥분'에 도취되었다. 파리에서 베케트, 사르트르, 장 주네 같은 작가들, 피카소 같은 화가와의 교유 관계는 그의 내면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천재 화가 고흐에게 동생 테오의 헌신이 있었듯이 자코메티도 솜씨 좋은 동생 디에고의 도움을 받았다. 동생은 조각의 보강재를 만들고, 석고본을 뜨고, 주물 공장에 나온 청동 조각에 색칠을 하며 형을 도왔다. 정작 자기 작품을 만들 시간은 없었다. 그랬건만 자코메티는 늘 불만을 터뜨렸다. 디에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말 구제 불능이에요. 참으로 힘든 사람이에요."

    자코메티는 작업실에서 밤샘 작업을 했다. 오후 1시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 뒤 작업실로 돌아와 6시까지 일했다. 다시 카페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밤새 작업을 했다. 이런 일과는 죽는 날까지 이어졌다. 그는 완벽주의자였다. "내가 만든 조각 작품을 앞에 놓고,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처럼 보이는 작품조차 파편에 불과하고 실패작일 수밖에 없다."

    자코메티에겐 어린 시절부터 이상한 강박관념이 있었다. 침대 옆 바닥에 신발과 양말을 가지런히 놓는 버릇이다.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신발과 양말이 가지런한 상태가 아니면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 자코메티의 습관은, 파리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추앙받으며 살다가 1966년 죽기 전까지 쭉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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