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무기 연기 미·북 회담, 김정은 핵 포기 결단한 것 맞나

조선일보
입력 2018.11.08 03:20

미 국무부는 8일로 예정된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회담 연기를 알리면서 "서로의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모이게 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대화는 계속해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어느 쪽이 회담 연기를 요청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국무부가 고위급 회담 개최를 공식 발표한 지 불과 하루 사이에 회담을 무기 연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변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번 고위급 회담은 미 중간선거가 끝나고 열린다는 점에서 다른 정치적 변수를 최소화한 채 실질적인 북한의 비핵화 실천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주고받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공식 발표까지 난 회담이 전격 취소되면서 북핵 협상 교착 국면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고위급 회담이 늦어지면 내년 초로 예고된 2차 미·북 정상회담도 정상적으로 열리기 힘들다.

미·북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차차 밝혀지겠지만 최소한의 성과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양측의 간극이 컸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는 북한이 최근 미국이 요구하는 핵 리스트 신고를 거부하고 선(先) 제재 완화만 고집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김정은은 지난달 초 폼페이오의 4차 방북 후 19일간 잠적했다. 대미(對美) 협상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쯤 하면 제재 완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빗나간 것이다. 김정은은 공개 활동을 재개하면서 "적대 세력들이 우리를 굴복시키려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 광분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후 북 매체들이 일제히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재 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핵·경제) 병진 노선을 다시 추구할 수 있다"는 협박성 메시지까지 내놓았다.

김정은은 핵 리스트 제출 요구에 대해 "북·미 간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물질, 무기, 운반 수단의 리스트를 신고하라는 것은 공격 목표 리스트를 제출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응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단순히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밀고 당기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비핵화 의지'라는 것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8월 말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의 방북 계획을 전격 취소한 뒤에도 협상은 재개됐었다. 미측이 "대화는 계속해서 이뤄질 것"이라고 한 것으로 볼 때 판 자체가 완전히 깨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치를 완강하게 거부하면 대화 날짜를 다시 잡는다고 해도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다. 우리도 김정은의 전략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