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철종 때부터… 160년 家業 잇는 5代 금박장

조선일보
  • 조유미 기자
    입력 2018.11.07 03:39

    최근 보유자로 인정된 김기호씨, 직물에 금박으로 문양 찍는 匠人
    "평범한 직장서 산업 로봇 만들다 代 끊을 수 없어 회사 그만뒀죠"

    "금박은 옷에 소망을 담아내는 작업입니다. 둥그스름한 과꽃 문양은 별을 상징하지요. 별처럼 빛나라는 의미입니다."

    붉은 댕기에 촘촘히 찍힌 과꽃 문양 금박을 쓰다듬으며 남자가 말했다. 지난 2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金箔匠) 보유자로 인정된 김기호(50)씨다. 금박장은 직물 위에 얇은 금박을 이용해 글씨나 문양을 찍어내는 장인. 그는 "'수(壽)'나 '복(福)' 자 문양이 금박에 많이 쓰인다"며 "예부터 오래 살고 복 받는 게 모든 사람의 소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에 있는 한 평 남짓한 공방엔 각종 조각칼과 대패, 다양한 크기의 망치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문양 하나를 새기는 데만 50~60개 도구를 쓴다고 했다. 책상 위엔 화려한 용왕(龍王) 문양이 새겨진 어른 손바닥 두 개 크기의 배나무판이 보였다. "예복에 찍어낼 문양을 두 달째 작업 중"이라고 했다.

    서울 북촌 공방에서 만난 금박장 김기호씨는 “100년 뒤에도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김씨의 뒤에 금박 문양이 찍힌 보자기(왼쪽)와 면사포가 걸려 있다.
    서울 북촌 공방에서 만난 금박장 김기호씨는 “100년 뒤에도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김씨의 뒤에 금박 문양이 찍힌 보자기(왼쪽)와 면사포가 걸려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김씨는 조선 철종 때부터 5대(代)를 이어온 금박장 가문에서 태어났다. 김씨의 고조는 조선 왕실 재정을 관리한 내수사(內需司)에 근무하면서 금박에 처음 관심을 가졌다. "당시엔 대체로 금실을 중국에서 수입해 옷을 만들었는데, 과정이 오래 걸리니 우리나라의 금박 작업을 활성화하는 게 어떠냐고 건의해 책임자가 되셨지요." 2대 증조는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에 장인으로 기록될 정도로 기술을 인정받았다. 2006년 금박장 보유자로 인정된 김씨의 부친 김덕환(83)씨는 이번에 명예보유자가 됐다.

    5대인 김씨는 "어릴 때 제가 쓰던 방이 아버지 작업실이었다"며 "아버지가 금박 입히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가 금박판으로 쓸 나무를 골라 와 톱질할 동안 그는 나무를 잡았고, 작업이 끝나면 마무리 뒷손질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협심증으로 쓰러져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하고도 돌아오면 조각칼부터 쥐는 아버지를 보며 장인정신을 배웠다"고 했다.

    금박이 찍힌 귀주머니. 양쪽 귀가 각진 형태다.
    금박이 찍힌 귀주머니. 양쪽 귀가 각진 형태다.
    원래 김씨의 꿈은 '로봇 만드는 과학자'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조립식 장난감 만드는 게 좋았다.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도 틈틈이 라디오나 컴퓨터를 조립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 산업용 로봇 설계 일을 했지만 5년 만에 그만뒀다. 가업을 잇기 위해서다. 그는 "직장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금박장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내 대(代)에서 끊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루 10시간씩 작업한다는 김씨는 "아직도 새로운 문양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애를 먹는다"며 웃었다.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문양을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 "금박은 판에 문양을 새기고, 풀칠을 하고, 금박을 찍어낸 뒤 뒷손질까지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요즘은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 안타까워요."

    그는 "160년째 가업을 잇고 있는 만큼 금박장 명맥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도 자식들에겐 '강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끔 일손을 돕는 대학생 아들, 딸이 있는데, 아직 금박장 하겠다는 말을 안 해요. 전통 기법인 금박에 대한 관심이 줄면서 경제적인 문제 등 현실적 어려움이 많아 고민입니다. 금박장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교육과 전승 활동에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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