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감 한마디에… '이승복 동상' 모두 사라질 판

입력 2018.11.07 03:01

"시대에 맞지 않고, 사실과도 다르다"며 교육청 간부에 철거 지시
대법원서 '이승복 기사는 사실' 판결했는데… 되레 사실관계 왜곡

노옥희 경남 울산시교육감
노옥희〈사진〉 경남 울산시교육감이 울산 일부 초등학교에 세워져 있는 이승복 동상을 철거할 것을 지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6일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노 교육감은 지난 5일 오전 교육청 간부회의에서 "지난주 초등학교를 방문해보니 이승복 동상이 있었다"며 "시대에 맞지도 않고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른 시일 안에 없앴으면 좋겠다"며 동상 철거를 지시했다. 울산시교육청은 노 교육감의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지역 내 초등학교의 이승복 동상 설치 현황을 파악하는 한편 동상 철거 절차와 방법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현재 울산엔 강남, 복산, 태화, 주전, 감곡초교 등 초등학교 12곳에 이승복 동상이 세워져 있다. 대부분 개인이 기증한 동상으로 알려졌다.

노 교육감은 울산 지역 1세대 운동권 인사다. 교사 출신으로 80년대 전교조 울산지부장, 90년대 민노총 울산본부 수석부본부장 등을 지내며 전교조 활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2000년대 이후엔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후보로 울산시장과 국회의원 선거 등에 출마했다.

울산 태화초등학교에 있는 이승복 어린이 동상.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은 최근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울산 일부 초등학교에 남은 이승복 동상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울산 태화초등학교에 있는 이승복 어린이 동상.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은 최근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울산 일부 초등학교에 남은 이승복 동상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노 교육감의 발언이 알려지자 지역에서는 즉각 반발이 나왔다. 우선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노 교육감의 철거 근거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이승복 사건의 사실관계는 법원에서도 진실로 확정됐다. 1959년생인 이승복은 1968년 12월 발생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공비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저항하다 가족과 함께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이 소식은 1968년 12월 11일 '공산당이 싫어요'란 제목의 본지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줬다. 이후 이 일화는 반공 교육 소재로 널리 활용됐고 '이승복 어린이'는 반공의 상징 인물이 되면서 전국 초등학교 운동장에 동상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일부 좌파 단체에서 '이승복 기사 조작' '거짓 보도'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 일화가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전국 곳곳의 이승복 동상들이 철거됐다. 결국 진실은 대법원에서 가려졌다. 2006년 11월 대법원은 "이승복 기사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해 작성한 사실 보도"라고 판결했다. 본지 보도에 대해 '현장에 가지도 않고 꾸며 쓴 거짓 보도'라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김모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또 2009년 2월 조선일보가 김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조선일보 기사에 보도된 이승복의 말이 거짓이라는 피고 김씨의 적시사실은 허위라고 볼 수밖에 없으므로 조선일보에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승복 동상 철거 반대' 측은 지역 교육계 수장인 노 교육감의 사실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울산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본지 통화에서 "엄연히 사실인 역사를 정치적 관점에 따라 뒤바꾸는 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다"라며 "과거의 남북 대치 상황을 미래의 자료로 삼도록 동상을 그대로 둬야 한다"고 말했다. 우강호 이승복 평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감의 역사 의식이 지나치게 편향적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 이사장은 "과거 남북 간 대립으로 인한 피해와 실상을 알려주고, 지금 조성되고 있는 남북 간 평화·화해 분위기도 그 시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며 "이승복 동상은 계속 존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교 내 동상 철거는 원칙적으로 학교장의 재량이어서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대개의 동상이 시민 기증으로 세워져 철거하려면 기증자와 유족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등 법적 절차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복 동상이 있는 울산 초등학교들은 "교육청에서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철거 공문을 보내오면 기증자와 교사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철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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