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겨서 北 주려고 안 쓸 건설예산 12조 편성, 국민 기만이다

조선일보
입력 2018.11.07 03:20

정부가 올해와 내년도 교통시설특별회계 예산에서 사용하고 남은 12조원을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 예탁할 계획이라고 한다. 교통시설특별회계는 도로·철도·공항·항만 확충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전용 예산이다. 이 정부가 토목공사 중심의 SOC 투자를 줄이면서 막대한 잉여금이 발생하자 이를 공자기금 계정으로 옮겨두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교통시설특별회계 예산으로 18조2400억원을 편성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 예산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 그 결과 도로·철도 등의 확충을 위해 쓰이는 교통시설특별회계 예산이 6조4000억원이나 남았다. 편성된 예산의 3분의 1 이상이 남은 것은 드문 일이다. 예산 잉여금은 내년도 세입(歲入)으로 넘기고 그만큼 새 예산 편성은 줄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돈을 공자기금에 예탁하고 내년도 예산을 또 5조6000억원 정도 남을 만큼 편성해 총 12조원을 공자기금에 예탁할 것이라고 한다.

교통시설특별회계 잉여금을 공자기금에 넣어두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렇게 큰 규모의 잉여금을 예탁한 전례가 없다고 한다. 더구나 공자기금에 들어간 돈은 국회의 개략적인 총액 심사를 거쳐 남북 협력기금 등 용도가 다른 회계나 기금으로 옮겨 사용할 수 있다. 실제 정부는 남은 돈을 감안해 내년도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국회 예산정책처 주장에 '대규모 인프라 사업, 남북 경협 등 향후 SOC 예산 수요 증가 등에 부응해야 한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국내 철도·도로 확충에 쓰기 위해 국민 세금으로 조성한 예산을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위해 돌려쓰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개성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개·보수 작업에 초기 비용 일부만 승인받은 뒤 실제로 100배가 넘는 돈을 쓰더니 이번엔 처음부터 쓸 생각이 없던 SOC 투자 예산을 편성했다가 일부러 남겨 그걸 북을 돕는 데 쓰겠다는 것 아닌가. 정부가 국민과 국회의 눈을 가리는 일을 예사로 하고 있다. 그런 배짱도 놀랍지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 충격적이다.

다른 용도도 아니고 북한 집단을 지원하는 돈은 국회에서 철저하게 심사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대북 지원 예산은 늘 이렇게 국민과 국회가 잘 모르게 운용한다. 북한이 실제로 핵을 포기하면 우리가 대북 지원에 나서야 할 수 있다. 그때 국민 동의를 얻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국민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공자기금 예탁을 취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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