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의 힘… 삼성도 LG도 명상에 빠지다

조선일보
입력 2018.11.06 03:01

"직원이 행복해야 성과도 좋다" 삼성, 1000억원 들여 영덕에 연수원
LG, 문경에 다도실 갖춘 힐링센터

삼성전자 김모 부장은 최근 경북 영덕의 회사 연수원에서 3박4일간의 명상(瞑想)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입소와 동시에 스마트폰·노트북을 모두 반납했고 나흘 내내 TV 한 번 못 봤다. 김 부장은 "처음에는 스마트폰을 보지 못해 매우 불편했지만 숲과 바닷가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명상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면서 "지금도 가끔씩 혼자 명상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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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에 있는 LG디스플레이 힐링센터에서 직원들이 다도(茶道)를 통한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는 작년 5월 1000억원을 투자해 경북 영덕군 칠보산 일대 8만5000여㎡(약 2만6000평)에 명상을 주제로 한 연수원을 열었다. 호흡·걷기·먹기·수면과 같은 생활 명상부터 숲·해변의 자연환경을 활용하는 응용 명상까지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을 삼성 임직원에게 제공한다. LG디스플레이도 지난해 경북 문경의 한 초등학교 폐교(廢校) 부지를 임차해 명상·요가·다도(茶道)실을 갖춘 '힐링센터'를 열었다. 개관식에 참석한 한상범 최고경영자(CEO)는 "직원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자연스럽게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올 3월에는 카이스트(KAIST)가 국내 대학 최초로 명상과학연구소를 열었다. 뇌파 측정, 호르몬 변화와 같은 과학적 방법으로 명상을 연구해 인공지능(AI), 뇌과학과 연계하겠다는 취지다.

미국의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와 IT· 창업 중심지 실리콘밸리를 강타했던 명상 열풍이 한국에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명상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공유 오피스업체 위워크는 서울 종로·강남 등 주요 지점에 조용한 공간에서 명상을 할 수 있는 명상실, 웰니스(wellness)룸을 따로 두고 있다.

서울 종로나 여의도·강남 등 오피스 중심지는 명상·요가센터들이 목 좋은 곳의 간판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다. 포털에서 검색하면 서울 강남구에만 500여 곳이 나올 정도다. 기업·대학·관공서 대상으로 명상 교육을 제공하는 전인교육센터의 이경재 대표는 "최근 4년간 명상 교육을 받은 사람이 3만명을 넘어섰다"고 했다.

기업들은 발 빠르게 사업에도 명상을 접목하고 있다. 안마의자 업체 바디프랜드는 최근 주파수와 물리적 마사지를 활용한 '브레인 명상·마사지' 기능을 탑재한 안마의자를 내놨다. 통신업체 KT도 TV에 '명상 실행해줘'라고 말하면 400여 건의 명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가지니 명상 서비스'를 5일 내놨다. 글로벌 명상 앱인 '헤드스페이스'는 이용자가 이미 3000만명을 넘어섰고 마보(마음보기), 마인드브리딩, 마음챙김과 같은 국산 앱들도 차츰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에 불어닥친 명상 열풍은 불경기 속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내몰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생겨난 반(反)작용으로 해석된다. 서점가는 이미 정신적 치유와 위로·공감을 주제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5일 교보문고의 월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중 절반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같은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는 정신질환 진료를 받은 직장인이 2013년 37만명에서 지난해 55만명으로 급증했다는 통계가 공개되기도 했다. 스마트 기기 중독, 주 52시간제 시행과 맞물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풍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청송 경기대 교수(한국건강심리학회장)는 "갈수록 복잡하고 치열해지는 사회 풍조에서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명상이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라며 "명상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상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도 현대인의 정신 건강에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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