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윤의 뉴스를 입다] 팔순에도 청춘의 상징 입은 신성일과 랠프 로런

조선일보
  • 최보윤 기자
    입력 2018.11.06 03:01

    최보윤의 뉴스를 입다
    '청춘의 곁엔 항상 ○○○가 있었다.' 정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면, 당장 허리 아래를 보라. 청바지를 꺼내 입은 지 오래됐다는 신호. 지난 4일 81세로 영면한 배우 신성일은 '청춘'의 아이콘답게 은발에도 청바지를 멋지게 입을 줄 아는 사내였다.

    그는 최근까지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에 청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옷장에는 해외에서 사온 아르마니, 겐조 등의 제품이 줄줄이 걸려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가 선택한 청바지도 150만원짜리 돌체앤가바나였다.

    신성일을 '뉴스타 넘버 원'으로 끌어올린 영화 '맨발의 청춘'(1964)에서 그는 몸에 딱 맞는 청바지를 유행시켰다. 알랭 들롱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느껴지는 위악적인 청춘의 느낌을 자아내려 직접 선택한 의상이다. 신성일은 "좋은 옷, 내가 좋아하는 옷 입으려고 허리 32인치를 유지한다"고 했다. 신성일보다 두 살 어린 79세 디자이너 랠프 로런이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 파티에서 선택한 의상도 청바지다. '블랙타이(턱시도 정장)'라는 드레스코드를 내걸고는 자신이 깨버렸다. 랠프 로런의 대답은 간단했다. "멋있어 보이니까."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 행사에서 청바지를 입고 팬들과 만난 신성일(왼쪽).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 행사에서 청바지를 입고 팬들과 만난 신성일(왼쪽). 최근 뉴욕에서 열린 랠프 로런 창립 50주년 행사에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디자이너 랠프 로런. /부산국제영화제·랠프 로런
    질기고 튼튼해 노동자들의 유니폼이었던 청바지는 옷 그 이상이었다. 갇힌 사고에 도전하는 도구. 1950년대 '반항적'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상당수 학교가 청바지 등교를 금지했지만 그럴수록 젊은이들은 청바지에 열광했다. 1960~70년대 히피와 펑크 시대에도 청바지는 기득권에 항거하는 표지였다. 1990년대 전후로는 호황기 부정부패를 겨냥해 찢어진 청바지가 유행했다. 지금 옷장을 열고, 청바지를 꺼내보자. 일자든, 디스코든 상관없다. 청바지와 멀어지는 건 '생각의 젊음'에 이별을 고하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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