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종북' VS '文 공산주의자'…'명예훼손 민사 판결' 서로 다른 이유는

입력 2018.11.04 17:21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부부에 대해 ‘종북(從北)’ ‘주사파(主思派)’라는 표현을 쓴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30일 이 전 대표 부부가 정치평론가 변희재(43·미디어워치 대표)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변씨는 2012년 3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 전 대표 부부를 '종북 주사파'라고 표현하는 글을 올렸다.

앞서 법원에선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한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7부(재판장 김은성)는 지난달 16일 문 대통령이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한 고영주(69)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0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고 전 이사장은 2013년 1월 문 대통령을 향해 "그는 공산주의자이고,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赤化)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다.

두 사건은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라는 같은 민사 사건에, 내용도 유사해 공인(公人)을 비판한 정치적 표현에 대한 명예훼손의 책임을 놓고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 지를 두고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었다. 그런데 두 재판 결과가 반대로 나온 이유는 뭘까.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두 사건 재판의 핵심 쟁점을 되짚어봤다.

다만, ‘변희재 사건’은 이번 대법원 판결로 끝이 났지만 ‘고영주 사건’은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앞서 이 전 대표 부부와 문 대통령 모두 같은 혐의로 형사고소도 함께 했지만 결과는 무죄였다. 변씨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고 전 이사장은 지난 8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통상 형사 사건에서는 명예훼손의 불법성에 대한 입증 기준을 민사 사건보다 더 엄격하게 보는 경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변희재(43·미디어워치 대표·왼쪽)씨와 고영주(69)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뉴시스, 조선DB
◇"종북, 주사파는 의견" vs. "공산주의자는 의견+사실"
법에서 명예훼손은 우선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성립한다. 적시한 사실이 맞는 사실이든, 허위 사실이든 상관없이 사실을 통해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면 명예훼손 책임이 인정된다. 반면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된 의견일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두 사건 모두 ‘사실의 적시'가 맞는지부터가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변씨가 이 전 대표에게 ‘종북’, ‘주사파’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단정적인 사실이 아닌, 의견 표명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종북이라는 표현은 ‘반국가·반사회 세력’이라는 의미부터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들’, ‘대북강경정책에 비판적인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남북 관계, 시대적·정치적 상황에 따라 개념이 변하기 때문에 의미를 확정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어 "주사파도 단순히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사실 적시’로 판단할 게 아니다"라며 "종북과 주사파 등의 표현은 정치적 행보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한 수사학적 과장이고, 의견 표명"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고영주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이 문 대통령에게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한 것은 ‘사실 적시’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문 대통령은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이 가치판단이나 의견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문 대통령은 체제전복 활동을 한 범죄자들을 변호하면서 그들과 동조하여’, ‘고 전 이사장에 대해 불만을 갖고 참여 정부(노무현 정부) 때 공정하지 못한 인사를 했다’ 등 사실을 의견과 혼합해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의견과 사실이 섞여있기 때문에 사실 적시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같은 사건을 두고도 형사 사건 재판부의 시각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경진 판사는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는 사정만으로 허위·진실 여부를 가릴 ‘사실 적시’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김 판사는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북한과 긴밀하게 연관된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 ‘북한에 유화 정책을 주장하는 사람’ 등을 부정적으로 이를 때 사용되기도 한다"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의(一意)적인 자유민주주의나 공산주의 개념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게 언급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조선DB
◇"종북 표현 진실 믿을 이유 있다" VS "공산주의자 발언, 믿을 만한 이유 없어"
이들 재판에서는 종북·주사파, 공산주의자 등 표현이 허위사실인지, 사실인지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등도 쟁점이었다.

‘변희재 사건’에서 대법원은 "당시 언론보도 내용과 사정을 고려하면 변씨가 종북 등의 표현 행위를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당시 언론에서 이 전 대표가 내란음모 등을 이유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핵심 세력인 경기동부연합 소속이라고 보도한 점, 과거 민주노동당에 있던 한 논객이 이 전 대표를 "동부연합이라는 정파의 마리오네트로 드러났다"고 평가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고영주 사건’ 민사 재판부는 "이 부분(공산주의자)이 진실하다거나 공안검사로 오래 활동한 고 전 이사장이 이를 진실로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고 전 이사장이 말한 내용이 문 대통령이 정치활동을 하며 표현·주장한 것들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혹 제기, 검증 차원을 넘어 ‘공산주의 활동’이라는 형사처벌 대상을 암시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 내지 편향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본 형사 사건 1심 재판부의 판단과는 엇갈린다. 김경진 판사는 "고 전 이사장은 수사, 재판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연합사 해체,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 여러 가지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과 태도를 공산주의자로 생각한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정치적 이슈들은 국민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거나 현재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고 전 이사장이 공산주의자 발언을 할만한 배경이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조선DB
◇公人에 대한 문제 제기… 어디까지 허용?
이 전 대표 부부와 문 대통령 등 공인(公人)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얼만큼 인정해야 하는지도 또 하나의 쟁점이었다.

‘변희재 사건’에서 대법원은 "당시 이 전 대표 부부는 공인이거나 이에 준하는 지위에 있었다"며 "이 전 대표 등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문제 제기가 허용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이 전 대표는 면책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대응하고 반박, 비판하는 등 상호 정치적 공방을 통해 국민의 평가를 받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고영주 사건’ 민사 재판부는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표 정치인 중 한 명이자 당시 유력 정당의 대통령 후보이므로 (고 전 이사장 발언이) 공공의 이해에 관계된 것은 맞는다"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공산주의자 표현이 우리나라에서 가지는 부정적인 의미에 비춰 볼 때 이런 부분까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형사 재판부는 "정치인의 정치적 입장이나 주장, 철학은 공론의 장에서 가장 잘 평가받을 수 있고, 또한 그것이 바람직하다"며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실로 다양할 수밖에 없고, 형사법정에서 개별 정치인의 사상, 세계관, 정치철학의 성격을 규정짓는 것은 그 능력과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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