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엄마'가 연출하는 의사들의 연극 무대

조선일보
  • 양승주 기자
    입력 2018.11.03 03:00

    고려대 의대·간호대 'OB 연극반' 창단 60년 공연 맡은 배우 김미경
    25년 전 인연 계기로 무보수 참여 "순수한 연기 보니 정화되는 기분"

    "반역 행위를 계속하겠다는 건 만용이오. 개인적인 만용!" "사랑 없는 의료 행위를 계속한다는 건 나 자신에 대한 반역 행위입네다!"

    지난달 31일 밤 10시 서울 강남구의 한 지하 연습실. 두 남성이 팽팽히 주고받는 대화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를 지켜보던 배우 김미경(55)이 갑자기 "스톱!"을 외쳤다. "소리를 더 키우셔야 해요. 지금은 너무 착해 보이잖아요. 발음도 좀 더 찌르듯이 해주시고요. 자, 따라 해 보세요. '개인적인 만용!'"

    김미경은 “여러 사람이 동고동락하며 무대를 완성하는 것이 연극만의 매력”이라고 했다. 아래 사진은 그의 지도 아래 ‘한씨 연대기’를 연습하는 모습.
    김미경은 “여러 사람이 동고동락하며 무대를 완성하는 것이 연극만의 매력”이라고 했다. 아래 사진은 그의 지도 아래 ‘한씨 연대기’를 연습하는 모습. /고운호 기자

    이들은 고려대 의대·간호대 연극반 출신 졸업생들로 구성된 이른바 'OB 연극반' 멤버들. 최연장자인 서동원(55·의대 82)씨부터 막내 김슬기(31·간호대 08)씨까지 멤버 10명이 모두 현직 의사, 간호사다. 이들은 올해 연극반 창단 60주년을 기념해 '한씨 연대기'를 공연한다는 목표로 지난 3월부터 연습에 매진해왔다. 김미경의 지도 아래 한 달에 두세 번 모이다, 공연을 앞둔 요즘은 일주일에 3번씩,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연습한다. 하루종일 환자를 돌보다 모이지만, 결석률은 '0'. 김미경은 "연극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오랜만에 순수한 연기를 보니 저도 정화되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김미경과 고려대 의·간호대 연극반의 인연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단 '연우무대' 시절, 학생들이 '정기 공연의 연출을 맡아달라'며 연락해왔어요. 당시엔 대학 연극반에서 연극배우에게 종종 연출을 부탁했죠. 그때 고른 것이 '한씨 연대기'였어요."

    '한씨 연대기'는 황석영 소설이 원작으로, 6·25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의사 '한영덕'과 가족들이 겪는 시련을 그린다. 1985년 이 연극으로 데뷔한 김미경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 김미경은 이후 14년간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최근엔 드라마에서 따뜻하고 속정 깊은 엄마 역을 맡아 신(新) '국민 엄마'로 사랑받고 있다. 김미경은 "당시 학생들과 합심해 무대를 만들고 무척 뿌듯했다. 그때의 즐거움을 또 한 번 느끼고 싶어 연출을 맡았다"고 했다. 연극반 회장 서동원씨는 "바쁘신데도 8개월 내내 무보수로 연출을 맡아주셨다"고 했다.

    공연의 또 다른 목표는 5년 전 사라진 재학생 연극반의 부활이다. 연극반이 없어졌다는 소식에 아쉬워하던 졸업생들은 '선배들이 공연하면 후배들도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의기투합했단다. 이들은 "연극은 의료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연극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면, 환자와 보호자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보다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게 됩니다." 김미경은 "관객도 배우들의 순수한 연기를 보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오는 9~11일, 서울 혜화동 드림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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