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15분 정도 기다렸다 드시라는 주인장 한소리 그래야 숨이 죽고 고소한 기름이 녹아들었다

조선일보
  • 정동현·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18.11.03 03:00

    [정동현의 pick] 김치찌개편
    서울 주교동 '보건옥'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치찌개를 끓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자취방 좁은 부엌에서 제일 처음 시도하고 또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이다. 조리법은 한없이 간단해질 수 있다. 물에 김치를 넣고 불을 올리면 끝이다. 여기에 삼겹살이나 통조림 참치 등을 넣으면 시고 기름지며 짜진다. 인도의 커리, 태국의 똠양꿍과 같이 맛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뜻이다. 보통 이런 음식은 중독에 가까운 선호를 낳는다. 다양한 감각을 활성화시키고 그만큼 쾌감도 크기 때문이다. 만들기는 쉽고 사람들은 많이 찾다 보니 메뉴판에 김치찌개 없는 집이 드물다.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가 끓일수록 맛이 진해지는 보건옥의 김치찌개. 찬 바람 불기 시작한 요즘 딱 좋다.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가 끓일수록 맛이 진해지는 보건옥의 김치찌개. 찬 바람 불기 시작한 요즘 딱 좋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하지만 제대로 하는 집도 드물다. 흔하다 보니 사람들은 그 가치를 몰랐고 식당은 타성에 젖었다. 이 불운한 음식을 잘한다고 소문난 집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서울에 3대 김치찌개 집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광화문에 있는 A는 접객 수준이 하락했고 시청의 B는 분점 확대로 아우라가 사라졌으며 공덕의 C는 끓여놓고 그때그때 퍼 담아 판다. 실상 서울에서 김치찌개가 제일 나은 곳은 김치찌개를 주력으로 팔지 않는 곳이라는 게 요즘의 생각이다.

    보건옥 위치도

    광화문을 벗어나 공구 상가가 몰려 있는 을지로 4가로 가보자. 청계천을 지척에 둔 좁다란 길에 대롱거리는 간판을 단 보건옥은 불고기로 유명한 집이다. 쾌적하고 우아한 식사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의문 부호가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불고기에 이끌려 한번 발걸음을 시작하다가 김치찌개로 빠져드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주차도 어렵고 찾기도 힘들지만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하는 무언가가 있다. 우선 이 집에 와서 김치찌개만 시킨다고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다. 불고기를 시킨 손님이나 소고기 등심을 시킨 객이나 같은 대접을 받는다. 김치찌개의 비결 중 하나가 넉넉한 돼지고기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적다. 이 집은 특히 고기의 양과 질에 아낌이 없다. 선홍빛을 발하는 고기를 바라보며 불을 올리니 주인장이 한소리를 툭 던졌다.

    "15분 정도 기다렸다 드세요."

    고기 맛이 국물에 우러나는 데 시간이 걸린단 뜻이었다. 단골들은 한술 더 떠 여기에 10분을 더 얹었다. 그 정도 푹 끓여야 김치 숨이 죽고 돼지고기 결이 풀어지며 고소한 기름이 국물에 녹아든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에 상에 깔린 반찬을 점검했다. 매콤한 멸치볶음도, 곰삭은 고추장아찌도 좋았지만 이 집의 새큼한 파김치는 꼭 집고 넘어가고 싶다. 라면 사리 하나 넣고 훌훌 불어가며 먹다가 파김치 한 젓가락을 올리니 '역시 나는 한국인'이란 자각이 팍 하고 들었다. 라면은 곧 사라졌다. 졸아든 국물을 떠 마실 차례였다. 대류열에 소용돌이치는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달달한 김치 속대, 뭉텅뭉텅 썰어 넣은 파, 폭신한 돼지고기가 씹혔다. 한국 사람처럼 뜨겁고 매운 국물이 몸속에 흔적을 만들며 스며든다. 흰 쌀밥에 그 드센 국물을 넣고 비볐다. 그리고 나는 익숙한 리듬으로 김치를 뜯고 고기를 씹으며 밥을 깨끗이 비웠다. 그것은 지독한 여름과 혹독한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음식이었다. 누구나 먹지만 아무나 맛보지 못하는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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