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1+1' 상품만 좋아하다간, 인생도 '덤'으로 취급받아요

조선일보
  • 이기호·2018년 동인문학상수상자
    입력 2018.11.03 03:00

    [누가 봐도 연애소설] 편의점, 그의 구매 내역

    [누가 봐도 연애소설] 편의점, 그의 구매 내역
    일러스트= 박상훈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우선, 사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골들의 취향. 그가 편의점에서 무엇을 고르는지 유심히 관찰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매일 밤 9시 무렵 편의점에 들르는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남자 P(신용카드에 적힌 그의 성을 보고 알았다). 그는 콧날도 날카롭고 눈썹도 진해 꽤 터프해 보이는 삼십 대 초반의 남자다. 키도 일 미터 팔십 센티는 넘어 보이고 어깨도 제법 넓어 매일 닭 가슴살이나 먹고, 스포츠 이온 음료 같은 것만 마실 거 같지만…. 사실 그는 '카라멜콘땅콩'(그런 이름의 과자가 있다) 중독자다. 매일 그 과자 두 봉지와 과일맛 소주, 불닭볶음면 등을 사서 편의점 바로 앞 원룸 건물로 들어간다(우리 편의점 고객은 대부분 그 원룸 건물에 산다. 나 역시 그곳 203호 거주자다). 언젠가 한번 퇴근길에 그가 원룸 건물 앞에 서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는 '카라멜콘땅콩' 얘기만 하고 있었다.

    "내가 세 봤어, 내가 세 봤다구. 이게 원래 땅콩이 일곱 개씩 들어 있었거든. 한데, 지난달부터 이게 다섯 개로 준 거야. 도대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아아, 이런 남자, 정말 싫다. 방에 혼자 앉아 과자 봉지 펼쳐놓고 땅콩 몇 개 들었는지 하나 둘 세는 남자란, 연애를 해도 여자 친구가 몇 번 밥 사고 자기가 몇 번 샀는지, 그 총액이 얼만지 백 원 단위까지 계산할 사람이 뻔하다. 그러니, 아예 연애할 생각도 안 하는 거겠지.

    '1+1'에 유난히 집착하는 중년 여자도 알고 있다. 이 여자 또한 편의점 앞 원룸 건물에 혼자 사는 40대 초반인데, 단 한 번도 '1+1' 아닌 물건을 산 적이 없다. 생수도, 만두도, 아이스크림도, 삼각김밥도, 모두 '1+1' 제품만 산다. 얼핏 보면 아끼고 절약하느라 그런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그냥 바보 같은 짓일 뿐이다. 물건 진열해서 파는 편의점들이 바보인가? 멀쩡한 제품을 뭐 예쁘다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공짜로 주겠는가? 그게 다 인기 없고, 안 팔리고 남는 물건들 처리하는 수법이지. 거기에 걸려들면 평생을 딱 그 수준에서만, 덤으로 남은 인생으로만 살게 된다. 남들 고르지 않고, 인기 없는 물건에만 맞춰지는 취향. 아줌마, 제주 삼다수 '1+1'으로 파는 거 봤어요? 이러다가 남들도 아줌마를 '1+1'으로 취급한다구요. 나는 그녀가 고른 물건들을 비닐봉지에 담아주면서 속으로 계속 그런 말을 했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나 자신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나의 현재. 나 또한 편의점 앞 원룸 건물에 혼자 살고 있는, 올해 서른한 살의 흔하디흔한 여자 공시생이지만, 뭐 그래도 지금까지는 외모나 성격에 대해선 별다른 콤플렉스가 없었다. 콤플렉스는커녕 거울을 볼 때마다 살짝, 이만하면 동안이고 피부도 좋지, 스스로 뇌까리기도 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편의점에 매일 들렀던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자애는, 나를 볼 때마다 '어우, 누나 진짜 이뻐요! 누나, 지금 대학교 몇 학년이세요?' 물어오곤 했다. 나는 아무 말 안 하고 계산만 했지만, 속으론 '하 참, 어린놈이 벌써부터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야' 생각하곤 했다. 물론 그놈이 왜 매번 나에게 그토록 번드르르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친한 척하려 했는지 금세 알게 됐지만(그놈은 사실 담배 살 수 있는 곳을 '뚫으려고' 그토록 내게 칭찬을 늘어놓은 것이었다. 내가 계속 거절하자, 그놈이 편의점을 뛰쳐나가면서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평생 편의점 알바나 하면서 살아라, 이 할망구야!'), 그래도 계속 나 좋을 대로 생각한 게 사실이다. 나는 잠깐 여기서 알바를 할 뿐이다, 알바가 내 직업은 아니고, 내 정신이나 외모를 지배할 수도 없고, 나를 규정지을 수도 없다고….

    그런 내 정신을 다시 '화딱' 들게 해 준 것이 402호 남자다. 그는 삼십 대 중반의 남자였는데, 매일 밤 11시 무렵 편의점에 들르곤 했다. 양복 차림에 뿔테 안경을 쓴 그는, 그 시간에 퇴근하는 모양이었는데, 거의 매일 편의점 핫도그와 닭날개 튀김으로 저녁을 대신하곤 했다. 편의점 안 테이블에 앉아서 콜라와 핫도그를 먹는 그의 등에 어쩐지 계속 눈길이 갔다. 짠해 보여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그게 꼭 전부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름, 분위기 있는 얼굴이었으니까.

    그래서 하루는 용기를 내서 핫도그를 고른 그에게 무심한 척, 말을 걸기도 했다.

    "요즘은 즉석밥도 꽤 잘 나오는데…."

    "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남자는 끔뻑끔뻑 두 눈만 움직였다.

    "매일 그렇게 핫도그만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구요."

    그 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마음 때문이었는지, 다음 날부터 남자는 내 말대로 하루는 즉석 미역국, 또 하루는 '쯔유우동' 하는 식으로 메뉴를 바꿔 사 갔다. 그게 뭘 의미하겠는가? 그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는 조만간 남자가 따로 말을 걸어오겠구나, 먼저 말을 건네겠구나, 짐작했다.

    그리고 바로 어젯밤, 남자가 쭈뼛쭈뼛 음식은 안 고르고 계산대 앞에 서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아 참, 또 몇 시까지 일하냐고 물어보려 저러나, 그냥 커피라도 고른 다음에 자연스럽게 물어올 것이지. 나는 일부러 남자 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고 기다렸다.

    하지만, 몇 분 후 남자가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물건을 보고 나는 순간 움찔했다.

    '초박형 콘돔'.

    달랑 그거 하나.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포스기(POS)를 찍었다. 내게서 콘돔을 건네받은 남자는 마치 신호를 받은 스포츠카처럼 편의점 밖으로 뛰쳐나갔다.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면, 나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너무 깊은 곳까지 알게 된다. 오래 할 일은 아닌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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