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칼럼] 국정 실패가 국정 농단이다

조선일보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입력 2018.11.02 03:17

    견제와 균형이라는 공화정 원리를 무시하며 위기를 자초하는 文 정부
    국민경제 망가지고 협치 위협받게 된 것은 '청와대 정부'의 獨善 때문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문재인 정부 2년 차가 끝나 간다. 하지만 한국 경제엔 먹구름만 가득하다. 사회는 산산이 분열되어 있다. 우리 공동체의 총체적 위기다. 경제 위기를 빌미로 보수가 반동을 꾀한다는 집권 세력의 음모론은 궤변에 불과하다. 지리멸렬한 보수 야당은 반격은커녕 제 앞가림조차 못한다. 문 정부는 촛불을 업고 중앙 권력과 지방 권력을 장악했고 사법부와 언론을 재편했다. 한국 사회의 권력 이동이 속전속결로 마무리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 공학은 민주당 50년 집권을 호언할 만큼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상황은 일변하고 있다. 무능한 국정에 동시다발적 경고음이 요란하다. 경제는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 동시 경질설(說)이 나돌 만큼 나쁘다. 민심이 떠나가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인기로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민생고가 이를 삼키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국면 전환용 적폐 몰이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도 높다. 북한에 모든 것을 거는 문 대통령의 전략은 국가적 도박의 성격이 너무 강하다. 설령 북핵 위기가 잘 풀려간다고 해도 북한 특수(特需)는 먼 미래의 장밋빛 그림일 뿐이다. 최소한 수십 년간은 천문학적 국민 혈세가 북에 투입될 수밖에 없다. 그 부담은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는 자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공화정의 원리를 무시한 게 위기의 최대 원인이다.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보여주듯 문재인 정부에서 모든 권력은 대통령과 청와대로 통한다. 제왕적 대통령의 지위를 남용한 박근혜 정부의 문재인식(式) 변용이다. 청와대의 목소리가 드센 만큼 내각은 식물화된다. 이는 민주공화국 헌법과도 충돌하는 행태이므로 촛불의 자기부정에 해당한다.

    실물경제에 무지한 청와대의 독선은 국민 경제를 망가트리고 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집착이 4대강 사업 몇 배의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게 뻔해도 제왕적 대통령의 독단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를 앞세워 국회를 우회하는 건 명백한 포퓰리즘이다. 문 대통령의 믿음과는 달리 직접민주제가 의회민주제로 진화한 데는 필연적 이유가 존재한다. 법치와 시민적 덕성이 사라진 직접민주주의는 중우정치로 타락하기 마련이다. 폭민정(暴民政)으로 몰락한 고대 아테네가 증거다.

    공화정은 직접민주주의의 단순 다수결 제도와 동일시될 수 없다. 법치주의와 공공선(公共善)의 존중, 시민적 덕성과 협치가 공화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화정이야말로 민주정치가 포퓰리즘으로 변질되는 걸 막는 최후의 보루다. 그게 바로 민주공화국의 헌법 정신이다.

    법치주의의 한계를 넘나드는 '청와대 정부'는 공화정적 정치의 본질인 협치를 위협한다. 원전 폐기엔 공론화를 도입하고 태양광발전 확장엔 공론화를 생략하는 널뛰기 행정에는 법치 대신 인치(人治)의 그림자가 짙다. 4·27 판문점 선언엔 국회 비준을 요구하다가 9월 평양 선언과 남북 군사합의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비준한 건 위헌 여부를 떠나 공화정적 협치의 근본정신에 위배된다.

    핵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김정은에겐 귀 기울이며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야당과 의회를 무시하는 것은 공화정의 원리와 충돌한다. 국회도 대통령처럼 엄연한 헌법적 선출 권력이며 공화정적 협치의 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정의와 공정을 입에 달고 사는 문재인 정부의 표리부동은 낙하산 인사와 고용 세습 추문에서 극(極)에 달한다. 어느 정권에나 낙하산 인사는 있다. 그러나 자칭 촛불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국정 농단으로 탄핵된 박근혜 정권보다 더 많은 낙하산 특혜 인사를 양산한 것은 변명이 불가능한 추태(醜態)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대량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고용 세습 의혹은 훨씬 더 심각하다. 만약 이런 특혜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사상 최악의 실업난으로 고통받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배반한 정권 차원의 중대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일찍이 철학자 헤겔은 역사를 도살장에 비유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집권자에 대한 대중의 과잉 기대와 과잉 환멸의 악순환은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역사의 주역이 된 집권 세력의 생명주기도 그만큼 짧아진다. 촛불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도살당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조차 한때는 보수의 장기 집권을 꿈꿨었다. 특유의 무능을 공허한 도덕적 우월감으로 가린 문재인 정부 아래서 민생은 표류하고 있다. 국민의 삶을 도탄에 빠트린 국정 무능과 국정 실패야말로 최악의 국정 농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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