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 사회 안보 사치와 '설마' 病 보여준 '병역 거부' 판결

조선일보
입력 2018.11.02 03:18

대법원이 어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대신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하라며 현행 병역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한발 더 나가 종교적 신념이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소수자를 관용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14년 만에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중대한 문제에 대한 법원 판단이 철마다 달라지는 유행 같다.

매년 종교와 신념 등을 이유로 징집을 거부하고 교도소로 가는 사람이 수백명이라고 한다. 이들을 교도소 대신 소방서나 요양시설 같은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하도록 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결을 내리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어떤 안보 상황에 처해 있는지 한 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평화가 온 듯하지만 실은 정규군만 120만명에 달하고 핵과 생화학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이 지척에서 위협하고 있다. 우리처럼 엄중한 안보 상황에 있지 않은 나라라면 '소수자에 대한 관용'도 존중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그럴 수 있는 처지인가. 이 판결을 보면서 나라가 안보 사치에 빠져 국가 생존을 놓고 공론(空論)을 벌이고 있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는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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