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장부터 이병까지 '이기마'… 장병 270명 빗속에 웃었다

입력 2018.10.29 03:11

[72회 춘천마라톤] 이기자부대 단체 참가론 최대
마라톤 열풍 주역은 권홍민 상사 "체력·단합심 함께한 뿌듯한 하루"

28일 오전 7시 30분 춘천마라톤 출발지인 공지천 인조잔디구장. 영상 3도의 쌀쌀한 날씨에 회색 긴팔과 긴바지 차림의 20대 남성 100여 명이 우르르 몰려와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각을 맞춰 체조를 하는 청년들은 굵은 빗줄기에도 소풍이라도 온 아이들처럼 표정이 밝았다. 그들 뒤로 '싸우면 이기는 이기자 부대 파이팅!'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이들은 육군 27사단 '이기자 부대'에서 온 이기마(이기자부대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다. 사병 50명을 포함해 올해 춘마에 190명이 단체로 참가했다. 이 인원만 해도 300여 단체 팀 중 규모가 가장 큰데, 개인으로 신청한 부대원들까지 합치면 270명 넘게 춘천마라톤에 나섰다.

이기자부대 “춘마 파이팅” 육군 27사단 이기자 부대 270여 명이 28일 춘천마라톤 10㎞와 풀코스에 도전했다. 출발 전 ‘싸우면 이기는 이기자 부대’라고 쓰인 현수막을 앞세우며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이기자부대 “춘마 파이팅” - 육군 27사단 이기자 부대 270여 명이 28일 춘천마라톤 10㎞와 풀코스에 도전했다. 출발 전 ‘싸우면 이기는 이기자 부대’라고 쓰인 현수막을 앞세우며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오종찬 기자

이기자 부대에 마라톤 열풍이 분 것은 '마라톤을 하면 사람이 바뀐다'는 얘기가 퍼지기 시작한 지난해 가을부터다. 그 중심엔 사단 포병부대 권홍민(41) 상사가 있었다. 권 상사는 스무 살 때부터 마라톤을 즐겨온 마니아다. 그는 지난해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부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관심병사' 대여섯 명을 춘천마라톤 10㎞에 데리고 나갔다. 달갑지 않은 얼굴로 마지못해 따라나선 관심병사들에게 권 상사는 "일단 뛰어보자. 네가 환하게 웃을 거라고 장담한다"고 말했다.

병사들은 권 상사와 함께 걷고 뛰고 하며 10㎞를 완주했다. 결승선을 넘고 헐떡거리며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권 상사와 병사들 사이에 웃음이 번졌다. 한 병사는 "살면서 처음 목표로 한 일을 제대로 완수한 경험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권 상사는 "마라톤은 자신의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운동'이다. 숨차게 달려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기억한 병사들이 적극적으로 동료들에게 다가가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여 뿌듯했다"고 말했다.

권 상사와 춘천을 달렸던 관심병사들이 이후 군 생활에 잘 적응한 뒤 무사히 전역하면서 '마라톤 효과'가 부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변화에 간부들이 반응했다.

올 초 사단사령부 김태룡(48) 중령이 "부대 차원에서 같이 춘마를 준비해보자"며 '이기마' 동호회를 창단했다. 처음에는 연대장 등 간부 30여 명이 주축이 됐는데, '마라톤이 좋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사병들도 자진해 입단 신청서를 냈다. 권 상사가 동호회 '코치'로 나섰다.

사단장부터 이병까지, 이기마 회원들은 '권 코치님'의 지도에 따라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부대 앞에서 달리기 등으로 체력을 다지면서 춘마를 준비했다.

'이기마' 출전자들은 이날 굵은 빗줄기를 맞으면서도 오후 3시를 끝으로 부상자 없이 모두 결승선을 통과했다. 기다리던 동료들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마지막으로 들어온 장병들의 젖은 몸에 덮어줬다. 전역을 50여 일 앞둔 강민철(22) 병장은 이날 10㎞ 완주에 성공한 뒤 "사회로 나가기 전 내 한계를 시험해 본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최은영(26) 중위는 "춘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함께 땀을 흘리면서 병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병들이 마음을 열고 고민을 터놓을 때면 마라톤의 힘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태룡 중령은 "부대 모든 구성원이 어우러져 같은 목표를 이뤄냈다는 게 뿌듯하다"며 "내년에도 춘천에서 '마라톤 전투'를 훌륭히 수행해 체력과 단합심을 기르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