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한의 애묘일기] 고양이와 함께 시속 2km, 게으른 산책

  • 이용한 시인
    입력 2018.11.06 06:00

    바깥 고양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산책이고 순찰이며 투쟁이다
    ‘여긴 내 영역이야’…폭설 내린 겨울에도 이어지는 고양이 산책

    ”내 영역은 여기까지…” 고양이는 언제나 산책 절반까지만 따라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우리를 기다린다./사진 이용한
    가을이 와서 다래나무집(마당고양이가 있는 처가)을 둘러싼 산자락이 얼룩덜룩하다. 주말마다 다래나무집에 내려갈 때면 우리 가족은 정기행사처럼 산모롱이길 산책을 한다. 약 한 시간 정도, 차도 인적도 없는 비포장 굽잇길을 걸어갔다 걸어온다. 우리가 산책하러 나갈 때면 어김없이 마당고양이 한두 마리씩은 같이 가자고 줄레줄레 따라나선다.

    어린 아들은 걷다가 강아지풀을 흔들며 고양이와 노느라 한참이나 뒤처져 있고,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메뚜기 사냥에 새 구경을 하느라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밤나무에 걸린 구름도 고양이의 더딘 걸음만큼이나 느리게 가을 하늘을 건너간다.

    앞서 걷던 우리도 덩달아 걸음을 늦춰 게으른 산책을 한다. 이건 뭐 산책도 아니고 쉬엄쉬엄 놀며 가는 나들잇길이다. 고양이와 함께 시속 2km. 가다가 계곡을 만나면 공연히 우리는 계곡물 소리를 듣느라 쪼그려 앉고, 고양이는 쉴 참에 물가로 내려가 맛나게 물을 마신다.

    산중으로 들어갈수록 적막이 깊어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와 흙을 차며 걷는 아들의 발소리와 야옹야옹 뒤따르는 고양이 소리만이 골짜기에 내려앉는다.

    쉬엄쉬엄 걷는 나들잇길. 계곡을 만나면 우리는 계곡물 소리를 듣느라 쪼그려 앉고, 고양이는 물가로 내려가 맛나게 물을 마신다./사진 이용한
    산책 코스의 절반쯤에 이르면 이제 고양이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떡갈나무 그늘에 주저앉는다. 나머지 절반은 고양이 없이 걷는 길. 고양이는 언제나 절반까지만 따라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우리를 기다린다. 한참 후에 우리가 돌아오면 숲 그늘에 누워있던 녀석은 어김없이 귀갓길에 합류한다. 매번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다래나무집 마당고양이의 영역이 여기까지인 듯하다.

    시속 2km, 고양이와의 산책은 게으르기 짝이 없다./사진 이용한
    돌아가는 길도 더디긴 마찬가지다. 아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거리고, 고양이는 이 험한 동행에 배고프다고 야옹거린다. 아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여기까지 따라와 놓고 인제 와서 빨리 가자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래 봐야 몇 걸음 못 가서 또다시 잠자리 잡으랴 귀뚜라미 쫓으랴 저만치 뒤처져 있다.

    이제나저제나 아들은 다리가 아프다며 업힐 궁리를 하고, 아내는 그런 뻔한 속을 다 알면서도 다 큰 아들을 업은 채 마당으로 들어선다. 뒤따라온 고양이도 "아이쿠, 힘들다" 하면서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밥그릇 물그릇을 찾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주말 행사처럼 반복되는 이런 산책의 시간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봄이면 산벚꽃이 피어서 아름다운 길.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져 운치 있고, 가을이면 온갖 빛깔의 단풍으로 곱게 물드는 길. 애석하게도 겨울에는 눈길로 변해 산책 대신 구경만 하고 마는 길.

    어차피 다래나무집 고양이에게 이 길의 절반은 자신의 영역과 다름없고, 혼자라도 수시로 순찰을 다니던 길이다. 심지어 폭설이 내린 겨울에도 고양이는 순찰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산책은 게을러도 순찰은 게을리할 수 없다는 게 녀석들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고양이에게 산책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순찰이자 투쟁이다./사진 이용한
    흔히 산책 고양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선 애묘인들조차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바깥에 사는 고양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산책이고 순찰이며 투쟁이다. 아무리 게으른 고양이도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돌보는 일만큼은 사람보다 분주하고 투철하다. 고양이가 영역 동물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 이용한은 10년은 여행가로 또 11년은 고양이 작가로 살았다. 199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고, 이후 고양이의 영역을 떠돌며 고양이의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다. 저서로는 ‘안녕, 후두둑 씨’, ‘당신에게 고양이’,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등이 있으며, ‘안녕 고양이’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 ‘고양이 춤’의 제작과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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