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이가 마루타냐" "문제없다" 혁신학교 추진에 쪼개진 초등학교

입력 2018.10.26 15:32 | 수정 2018.10.26 19:23

교장 vs. 학부모회 ‘혁신학교’ 신청 논란
일부 학부모 "학력 떨어지고 이념교육...절차도 문제"
학교는 학부모에게 "절차상 문제없다"

"일방적으로 혁신학교 신청을 결정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마루타’가 되는거죠."
"맞아 맞아"
지난 25일 저녁 7시, 서울 구로구 온수초등학교 강당에 학부모들이 모여 들었다. 이날 모인 120여명의 학부모들은 누군가 마이크를 붙잡고 발언할 때마다 "맞아! 맞아!"하면서 거들었다.

25일 온수초 강당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학부모가 발언하고 있다. 온수초 학부모회는 이날 "이번 혁신학교 지정 신청 과정이 크게 잘못됐다"며 "학부모의 권리를 심하게 침해당했다"고 밝혔다. /독자 제공
이날 학부모 임시총회에 참석한 학부모 얘기다. "혁신학교가 도대체 뭔지도 모르는 학부모가 더 많습니다. 가정통신문에는 온통 혁신학교가 좋다는 내용 밖에 없었으니까요. 이념교육하는 학교로 바꾸는 것이라 말한다면 찬성할 학부모 몇이나 되겠습니까."

학부모 임시총회는 늦은 밤인 이날 오후 9시까지 계속됐다. 저녁을 거른 학부모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온수초 학부모회는 "민주주의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진보교육감이 지휘하는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냐. 목숨보다 귀한 아이들의 인생이 부당하게 희생되도록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온수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혁신학교 지정 앞두고 교장 對 학부모회 대결 구도
교장 대(對) 학부모회 갈등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3월 양영식 교장 부임 이후 혁신학교 전환 움직임이 생기면서부터다.

양 교장은 직전까지 서울시교육청에서 혁신학교 운영·홍보업무를 담당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교장이 혁신학교에 부정적인 교사들을 하나씩 면담했다"는 말이 떠돌았다. 익명을 요구한 온수초 학부모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학교장이 사실상 혁신학교를 독단적으로 밀어 붙였다"고 말했다.

온수초 학부모들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혁신학교 추진하는 학교 측 행태를 문제삼고 있다. 개념도 생소한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혁신학교 홍보문구/유튜브 캡처
혁신학교 추진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요청하면 ‘설명회’가 열린다. 그런데 온수초는 설명회 신청마감일인 지난 2일까지 혁신학교 추진 사실을 학부모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혁신학교 설명회 요청 기회를 날린 것이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설명회를 요청할 수 없게 된 지난 4일에서야 가정통신문으로 혁신학교 찬반을 묻는 가정통신문 한 장만 보냈다.

‘혁신학교가 되면 교육과정에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예산이 지원된다’ ‘교직원 근무여건이 개선된다’ ‘학부모와의 소통이 강화된다’는 칭찬 일색이었다. 학부모 A(43)씨는 "가정통신문이 아니라 ‘혁신학교 홍보 전단’이나 다름 없었다"면서 "저를 포함한 많은 학부모는 혁신학교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찬성했다"고 말했다.

학생 1103명이 재학 중인 온수초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투표 결과는 혁신학교 신청 찬성 60%, 반대 39%였다. 투표율은 59%였다.(전체 학부모 1080명 가운데 646명 참여)

반발 목소리는 뒤늦게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온수초 측은 지난 16일 또 다시 가정통신문을 통해 "혁신학교 설명회가 의무사항은 아니다"면서 "지난해 학부모 설명회에서 혁신학교 추진을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온수초 학부모회 측은 "학교 측이 말하는 ‘설명회’는 기실 소규모 학부모 연수를 가리키는 것"이라면서 "당시 전교조 퇴직 교원들이 만든 ‘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편파적으로 혁신학교 홍보하고 돌아간 게 무슨 설명회냐"고 반발하고 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온수초에 수 차례 연락했지만, 학교 측은 응답하지 않았다. 직접 학교에 찾아가도 "할 말이 없다"면서 만남을 거부했다.

온수초 학부모회는 혁신학교 전환에 집단 발반하고 있다. 사진은 온수초 전경./한동희 기자
◇일선 교육현장서도 ‘혁신학교’ 우려 목소리
혁신학교는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이 경기교육감 시절인 2009년 도입한 학교 모델이다. 교사에게 교육과정 자율권을 주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활동·토론 중심 수업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혁신학교 확산’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 가운데 하나로 이른바 진보 진교육감들의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4월 현재 전국의 혁신학교는 모두 1525개교다.(초교 902개교·중교 481개교·고교 142개교) 연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68곳이었던 서울형 혁신학교를 올해 200곳(32곳 추가)까지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학부모들 반발에는 ‘초등학생에게 이념교육 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이 깔려 있다. 학부모들은 전교조의 계기(契機) 수업을 대표적인 ‘이념 교육’으로 꼽고 있다. 계기 수업은 교육과정에 속하지 않은 특정 주제를 가르칠 필요가 있을 때 하는 교육이다. 학교장 승인만 받으면 교사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다. 실제 전교조가 지난해 ‘6·15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해 진행한 계기수업 초등학생용 자료에는 "남북의 군사력 차이를 비교해보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확률이 낮다"고 되어 있다.

당시 경기도 시흥의 한 초등학교에서 계기 수업을 진행했다는 교사는 "김정은 돼지XX 등 북한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북한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고 통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전교조 기관지 ‘교육 희망’에서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꼭 ‘혁신학교=전교조’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현석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초창기에는 전교조 교사들이 대거 혁신학교로 지원하면서 정치적으로 다른 성향의 교사들과 갈등을 빚었다"면서도 "다만 현재는 혁신학교가 많이 보편화되면서 전교조 교사가 꼭 아니더라도 ‘좋은 학교 만들기’ 일환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혁신학교 지정 이후의 수업 방식에 대해서도 학교 측이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온수초 학부모회 임원 B(42)씨는 "혁신학교가 되면 전교조식(式) 수업이 진행될까 봐 우려하는 학부모들이 많은 만큼, 여기에 대해 학교 측이 설명을 해줘야 한다"면서 "가치관이 형성되기도 전에 주입되는 이념교육은 아이들에게 독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혁신학교 반대 진영에선 학력 저하 문제도 거론한다. 혁신학교 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초·중학교보다 고교의 반발 목소리가 크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나온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혁신학교 고교생의 '기초 학력 미달' 비율(11.9%)은 전국 고교 평균(4.5%)보다 세 배 가까이 높았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혁신학교는 학업성취도를 희생시키는 대신에 무엇을 얻어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학생들을 교사의 개인적 이념이나, 가치관에 의해 수업을 진행하고 선도해나가는 수업방식은 민주주의 사회 교육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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