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스리랑카 법정에 세운 20년전 성폭행범 초동수사 잘했더라면…

조선일보
  • 김아사 기자
    입력 2018.10.27 03:00

    [히든 카드]

    [히든 카드]
    일러스트=안병현

    비극은 1998년 대구 구마고속도로 위에서였다. 당시 열여덟 살이던 정은희양은 23t 트럭에 치여 숨졌다. 시신은 심하게 훼손됐지만 속옷이 보이지 않았다. 속옷은 사고 현장에서 30m가량 떨어진 풀숲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범인이 지목된 것은 15년이 흐른 2013년, 은희양의 속옷에 묻어 있던 정액 DNA가 스리랑카인 K씨의 것임이 드러나면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공소시효 만료와 증거 부족 등으로 국내 처벌이 어려웠던 것. K씨를 스리랑카 법정에 세우는 것이 차선이었다. 검찰은 항소심을 맡았던 김영대 검사장을 중심으로 6명의 전담팀을 꾸렸다. 하지만 현지 검찰은 K씨 정액이 은희양의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기소를 꺼렸다. 전담팀은 스리랑카 검찰총장을 찾아가 3시간가량 토론을 벌였다. DNA 전문가까지 대동해 설득 작업을 했다. 현지 검찰이 대구를 방문한 후 완강한 태도가 달라졌고 12일 마침내 K씨를 기소했다. 혐의가 성추행에 그쳤다는 비판도 있지만, 지방법원이 아닌 콜롬보 고등법원에 기소됐다는 점은 그만큼 죄가 중하다고 여겼단 뜻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경찰의 초동 대응은 미흡했고 사건을 다시 수사한 것은 유족들이 검찰과 경찰, 청와대에 문전박대를 당하면서 진정과 탄원을 했기 때문이다. 거듭 복기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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