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국문학계 巨木, 그는 매일 스무장씩 썼다

입력 2018.10.26 03:00

문학평론가 김윤식 명예교수 별세
60년간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 도서관 구석까지 발품 팔아 취재

김윤식(82)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가 25일 오후 7시 30분 노환으로 타계했다.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자로 방대한 집필량과 독서량, 실증(實證) 연구 업적 때문에 국문학계 거봉(巨峯)으로 꼽혔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기도 한 김 교수는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서영채 서울대 아시아 언어문명학부 교수는 "김윤식 교수는 학문의 넓이와 깊이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우리 또래 국문학자들에게 넘어야 할 산이었다"며 "우리가 뭘 써보려고 하면 '김윤식 교수가 먼저 다 써놨더라' 탄식하면서 우리 모두 '작은 김윤식'이 됐다"고 애도했다.

김윤식은 평소 "나는 발바닥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국 근대문학사의 현장을 취재해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거나 국내외 여러 도서관 귀퉁이에서 먼지 쌓인 채 방치된 자료를 찾아내느라 발품을 팔았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1986년)는 30년에 걸쳐 이광수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를 탐구한 끝에 완성한 평전이다. 이광수 개인의 삶과 문학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를 주도한 인물과 사건, 사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한국 근대 지성사를 재구성한 역저(力著)로 꼽힌다.

김윤식 교수는 60년간 개인 저서 147종을 썼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취미도 없고 바둑도 못 두고 테니스도 못 친다”고 했다. 만해대상(2003년), 민세상(2014년)을 수상했다.
김윤식 교수는 60년간 개인 저서 147종을 썼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취미도 없고 바둑도 못 두고 테니스도 못 친다”고 했다. 만해대상(2003년), 민세상(2014년)을 수상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1936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근대 문학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9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1973년 첫 저서 '한국 근대 문예비평사연구'를 펴낸 뒤 한국적 '근대성'이 지닌 의미를 문학 사상의 차원에서 평생 연구해 국문학계 거목(巨木)으로 우뚝 솟았다. 민족주의·계몽주의·자본주의·사회주의가 뒤엉킨 근대성이 한국 문학에 투영된 역사를 치밀한 실증 작업을 거쳐 왕성한 필력으로 풀이했다. 이론서 '한국 근대 문학사상' '한국 근대 작가 논고' '한국 근대 문학과 문학교육' 등을 펴냈고 김동인·이상·염상섭·김동리 등 주요 작가들의 삶을 추적한 평전도 써냈다.

김윤식은 당대 문학의 현장을 쉼 없이 조명한 비평가로도 활동해 팔봉비평상·김환태문학평론상·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단행본뿐 아니라 여러 문예지에 발표된 신작 단편까지 다 챙겨 읽으며 그때그때 평론을 썼다. 병석에 눕기 전까지도 올해 초 문예지들에 실린 단편을 품평했다. 지난 6월 발행된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평론이 그의 마지막 현장 비평이 됐다.

김윤식은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전념해 개인 저서만 150여 권에 이른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라고 했다. 매일 200자 원고지 20장씩 썼다. "하루 20매란 내 건강의 리듬 감각"이라고 했다.

제자들은 스승이 팔순을 맞자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에서 '김윤식 저서 특별전: 읽다 그리고 쓰다'를 열었다. 김윤식이 60년간 원고지 10만장이 넘도록 써서 출간한 개인 저서 147종을 비롯해 총 200여 종의 책을 한자리에 모았다. 개막식에서 김윤식은 "누구든 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 가지 할 수 있지만, 나처럼 전시회를 여는 사람은 행운아"라고 밝혔다. 그날 그는 "지금껏 남의 글을 읽고 글을 썼는데 이제 내 글을 쓰고 싶다. 그게 시가 될지, 소설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끝내 창작은 내놓지 않았다. 유족으로 부인 가정혜(83)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28일 7시. (02)2072-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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