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턴, 크리스토퍼 힐.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한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할 경우 한국 경제에 극히 해로울 것"이라고 하는 등 우리 정부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 관계 '과속'과 '한·미 분열'에 대한 우려는 미국 내에서 계속 나왔지만, 그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는 것이다.

수전 손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행은 22일 저녁(현지 시각) 하버드대학에서 열린 북한 문제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에서 근본적인 진전이 있기 전에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협상을 보면 북한은 파트너들을 갈라놓는 데 달인"이라며 "김정은이 한·미 사이에서도 그런 일을 시도할 것이란 점을 우리가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7월 말 국무부를 떠난 손턴 전 차관보 대행은 "내가 국무부에 있을 때만 해도 한국의 카운터파트들과 잘 소통했었지만, 양국이 (북한과 관련해)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도 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도 23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진전을 어떻게 이뤄 나갈 것인가에 대한 전술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근본적인 이견이 있다"며 "만약 한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에 일방적인 접근법을 취하기로 결정할 경우, 한국 경제에 극히 해로울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도 이 방송에서 "남북대화가 비핵화 진전 속도에 비해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모습은 처음 봤다"며 "남북대화와 비핵화 과정이 현재로선 밀접히 연결돼 있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 연구소 선임 연구원도 VOA에 "현 상황처럼 미군 사령관이 한국 내 군사 배치에 책임을 지는 상황에서 미군 사령관에게 알리지 않고 북한과 군사합의를 하는 것은 동맹의 신뢰에 상당히 위배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최근 서울을 방문한 미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북 협상을 지켜보는 워싱턴의 전문가 열에 아홉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비핵화가 답보 상태에 빠져있는데 남북 관계에 속도를 내려는 한국 정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 안팎의 여론도 매우 좋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 측 분위기와는 달리 23일(현지 시각) 워싱턴을 방문한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연내 종전 선언이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북) 실무협상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얼마나 심도 있게 합의를 도출하는지에 달렸다"며 "실무협상에서 얘기되면 연내 종전 선언이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고위 관계자는 "북한에서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달 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후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의 실무협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게다가 폼페이오 장관이 희망하고 있는 고위급 회담에도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내 종전 선언'을 언급한 것이다.

김정은의 연내 서울 답방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북·미가 1월 정상회담 개최를 실무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비핵화 진척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며 "이 과정에서 남북 정상이 서울에서 만날 여건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