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음악 서비스 업체인 텐센트뮤직엔터테인먼트(TME)는 이번 달로 계획했던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갑작스레 연기했다. 사용자가 8억명에 달하는 TME는 상장 이후 시가총액 300억달러(약 3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앞서 지난 8월에는 세계 최대 핀테크(fintech·기술금융) 기업인 중국의 앤트파이낸셜이 상장을 2020년 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알리바바의 자회사로 지난 6월 투자금 유치 당시 기업 가치를 1500억달러(약 170조원)로 평가받았고 올 연말 상장이 유력했었다. 내년 상장을 추진하던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디디추싱 역시 일정을 연기한 상태다.
올해 주식시장에 상장한 중국 IT(정보 기술) 기업들도 주가 하락에 허덕이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인 샤오미는 지난 7월 상장 이후 주가가 27% 하락했고, 지난달 20일 상장한 중국 최대 음식 배달 서비스 업체인 메이퇀뎬핑 역시 23%나 폭락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돌입하면서 중국의 기술 굴기(崛起·우뚝 섬)를 주도해왔던 IT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해 기업공개(IPO)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끌어모을 계획이었던 중국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 기업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IPO 일정을 연기하거나 취소했고 하드웨어 업체들의 성장세도 꺾이고 있다.
◇실적 꺾이고, 투자 중단하고, 구조조정까지 단행하는 중국 IT 업계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한 타격이 본격화된 것은 3분기부터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19일 올 3분기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5%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였던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증시도 폭락하고, 중국 기업들의 투자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기업 투자를 보여주는 지표인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은 올 들어 9월까지 5.4%에 불과해 1년 전보다 2%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실제로 중국에서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해왔던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줄줄이 공장 증설을 중단했다. 이번 달에만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CEC와 HKC가 각각 10.5세대, 11세대 대형 LCD(액정 표시 장치) 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시켰다. 초대형 LCD 패널을 생산하는 10.5세대 이상 LCD 공장은 생산라인 하나 짓는 데만 수조원이 들어갈 정도로 규모가 크다. 대만의 IT 전문 매체인 디지타임스는 최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예전과 달리 자금 조달에 문제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배터리 업계에서는 공장 가동 중단, 설비 가압류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세가 꺾이면서 중국 당국이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감축하자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기업까지 속출하는 것이다. 중국 3위 배터리 기업인 옵티멈나노 에너지는 지난 8월 자금 부족을 이유로 6개월간 생산 라인 가동을 아예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또 다른 기업인 난징 인롱 뉴에너지는 경영난으로 생산 설비가 압류됐다. 중국 대표 배터리 기업인 BYD(비야디)는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72%나 급감했다.
◇장기화되면 중국 IT 굴기 큰 차질
중국은 IT 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난항을 겪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반도체 산업은 2020년까지 40만명의 인재 부족 사태를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인재 유출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8월 중국 자본의 미국 기업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켜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술·인재 유출을 사실상 봉쇄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인재 유출을 통해 특허나 기술 같은 지식재산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도 5G(5세대 이동통신)망 구축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호주, 일본, 인도, 캐나다가 보안 우려를 이유로 5G망 구축에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델오로에 따르면 세계 1위 통신 장비 업체인 화웨이의 시장점유율은 2016년 31.8%에서 지난 6월 30.7%로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