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만들고 키우는 중국, 파괴하고 나눠 먹는 한국

조선일보
입력 2018.10.24 03:19

세계적 혁신 도시로 성장한 중국 선전(深�)이 경제특구 1호로 선정된 지 38년이 됐다. 인구 3만명의 어촌이 100m 이상 고층빌딩만도 1000여 곳을 거느린 인구 2000만명의 초현대 도시로 탈바꿈했다. 시가총액 세계 10위권의 IT 기업 텐센트와 세계 드론 시장의 70%를 장악한 DJI를 비롯, 혁신 스타트업과 미래형 벤처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세계 최강의 산업 생태계를 만들었다. '아침에 디자인하면 오후에 시제품이 나온다'는 말이 선전의 가공할 역동성을 말해주고 있다. 하루 1512개꼴로 법인이 생기고 1년에 55만명의 고학력 청년이 몰려든다. 꿈의 도시다.

선전은 세계의 '생산 공장'에서 '혁신 기지'로 도약한 중국의 약진을 상징하는 장소다. 중국은 IT에서 조선·자동차·원전까지 대부분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과 대등한 수준까지 따라왔거나 앞질렀다. 인공지능·바이오·드론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선 우리를 앞질러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우리보다 16년 늦게 경제개발에 착수한 중국은 기술 축적에 필요한 시간적 제약을 14억 시장이라는 거대 공간의 힘으로 압축 돌파했다. 이젠 대부분 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세계 최초 모델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잠시 중국이 우리 하도급 기지였던 시절은 끝나고 우리가 중국의 하도급 공장으로 전락할 역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중국 선전의 발전상은 우리에게 낯선 모습이 아니다. 선전처럼 성장의 활력에 넘쳐나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정주영의 기업가 정신은 한적한 어촌 울산을 현대적인 조선·자동차 산업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이병철의 반도체 신화, 이건희의 초격차 전략, 박태준의 철강 입국론(立國論)도 있었다. 기업들이 밖에 나가 처절하게 경쟁해 벌어온 국부(國富)가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성장시켰다. 정부와 기업, 청년과 노동자 등 모든 주체가 '성장의 사다리'를 확신했다. 전체 파이(크기)를 키워 국가도 국민도 잘살자는 올바른 공감대가 나라 전체에 형성돼 있었다.

그러던 우리가 어느새 온통 나눠 먹기 풍조가 지배하는 나라가 됐다. 정권 잡기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은 표를 돈으로 매수하는 포퓰리즘을 거의 유일한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세금 만능주의가 판치고, 규제 풀어 시장 활력을 살려 새로운 국부를 창출하는 대신 있는 파이를 쪼개고 나누는 분배 정책에 골몰한다. '시위' '협박' '망신 주기'라는 힘을 가진 노조와 시민단체가 새로운 권력이 됐다. 꿈을 잃은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에 몰린다. 3세대 기업가들은 기업가 정신을 잃고 머니 게임에 빠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활력에 넘쳤던 나라가 진취성을 잃고 무기력에 빠져 우리끼리 물고 뜯고 싸우고 있다.

중국에선 오늘 '선전의 기적'을 상징하는 55㎞ 길이의 해상 대교가 개통된다.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마카오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이 다리가 개통되면 인구 6억명, GDP 1조4000억달러의 거대 경제권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9배 큰 거대 중국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혁신하고 만들고 키우는데, 우리는 파괴하고 가르고 나눠 먹는 일에 열중해 있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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