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은 일본 막부(幕府) 통치를 무너뜨리고 국가 권력을 장악한 일왕(日王) 세력이 새 시대의 원호(元號)를 '메이지(明治)'로 명명한 지 150주년이 되는 날.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가 주관하는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메이지유신을 입에 올렸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 행사에서 다시 그 의미를 강조하며 헌법 개정 의지를 밝힐 예정이다.
아베 총리는 '메이지유신의 태동지'로 자부하는 조슈(長州·현 야마구치현) 출신. 그는 정치를 하면서 메이지유신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소재로 활용해왔다. 19세기 중반 학당 '쇼카 손주쿠(松下村塾)'를 만들어 메이지유신의 걸출한 인물들을 길러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고 있다고 말해왔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전파하는 '월간 쇼카 손주쿠' 창간호가 만들어질 때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그가 쓴 붓글씨 '성(誠)'을 모방해 쓴 것을 자랑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올해 150주년을 맞는 메이지유신을 국가적 관심사로 끌어올려 다채로운 행사를 하도록 유도해왔다. 정부 홈페이지에 '메이지유신 150주년 사이트'를 별도로 만들어서 1년 내내 가동 중이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22일 현재 전국적으로 총 85개의 메이지유신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다. 도쿄에서는 법무성이 주관해 메이지유신 150주년 특별 전시회가, 지바현에서는 '문명 개화의 힘, 우리 에도 시대를 졸업합니다'라는 제목의 기획전이 개최되고 있다. 일본 NHK는 유신 3걸 중 한 명으로 '정한론(征韓論·한반도 정벌)'을 주장했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일생을 담은 드라마를 제작해 매주 방영하고 있다. 야마구치현과 함께 삿초(薩長·사쓰마+조슈) 동맹을 결성, 메이지유신에 기여했던 가고시마현(옛 사쓰마)은 1년 내내 관련 행사로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왔다.
메이지유신은 일본을 아시아의 변방 어촌 국가에서 근대화에 가장 성공한 나라가 되도록 하는 데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일왕을 떠받든 사무라이들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입헌군주제를 정착시켰고 산업화를 달성해 세계 경제 대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메이지유신이 일본을 군국주의로 나아가게 한 맹아(萌芽)가 됐다는 지적도 많다. 당시 서구의 팽창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중국·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에 군홧발을 들이밀었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메이지유신이 일본 근대화에 기여한 것만을 언급할 뿐, 그 후 군국주의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2000만명의 희생자를 만든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선 일절 말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국회 연설에서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조상을 본받아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 때"라고 말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도 "삿초의 힘을 모아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다"고 했다. 헌법 개정과 군사력 증강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일본 진보 세력은 아베가 메이지유신을 이용해서 다시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제가 아시아 각국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고 반성한 무라야마(村山) 담화를 계승하는 모임은 최근 아베 총리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이 모임은 메이지유신 이후 "아시아 각국에서 2000만명, 일본에서도 300만명의 희생자가 생겼다"고 비판했다. 또 "일본의 (유신 이후) 150년을 말할 때 그토록 큰 피해를 낳았던 침략과 식민 지배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메이지유신 정신을 악용해서 군비 증강과 헌법 개악을 노리고 있다고도 비판한다. 이 모임은 "(메이지유신 이후) 침략의 역사를 은폐해서 일본의 근현대사를 왜곡 날조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23일 아베 총리 비판 집회를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