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살해 후폭풍… 美의원들 "빈살만 왕세자 물러나라"

조선일보
  • 정시행 기자
    입력 2018.10.23 03:01

    공화·민주당 "카슈끄지 죽음, 사우디 왕세자 책임" 목소리 커져
    獨 "5400억원 무기 수출중단"… 투자자들은 6억5000만弗 회수

    언론인 한 명의 참혹한 죽음이 절대왕정의 최고 권력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이 왕국의 중동 맹주 지위까지 위협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사우디아라비아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에 대해 사우디의 실질적 지배자인 무함마드 빈살만(33) 왕세자의 퇴진까지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 의회가 가장 강경하다. 공화·민주 양당이 일치된 목소리로 사우디에 대한 외교·경제적 제재뿐 아니라 왕세자 교체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공화당의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21일(현지 시각) "난 빈살만이 카슈끄지를 살해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합당한 벌을 내리도록 미국과 유럽이 공동 대응하자"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딕 더빈 상원의원은 "사건 곳곳에 왕세자의 '지문'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데, 사우디 왕실의 말만 믿는 사람은 지구상에 트럼프 대통령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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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 제재하라”시위 - 19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운데 왼쪽)로 변장한 평화운동 단체‘코드핑크’회원들이 사우디를 제재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공화당 랜드 폴 상원의원은 "'주먹다짐이 어쩌다 톱질이 됐다'는 사우디 발표는 지성을 갖춘 이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사우디 제재로는 충분치 않으며 왕세자가 갈려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 톰 틸리스 상원의원도 "독립적 수사가 필요하며, 결과에 따라 왕세자 교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사우디라는 동맹국과 빈살만이라는 개인을 분리해 대응하자"며 빈살만의 미국 출입 금지와 미국 내 재산 동결부터 하자고 주장했다.

    사우디를 중동의 맹주로 떠받쳐온 미국이 이렇게 공개 비난에 나선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미국은 적국 이란을 제어하기 위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를 동맹으로 묶어두고, 사우디의 중동 주변국에 대한 군사·경제적 영향력을 용인하면서 내부 인권 문제는 눈감아줘 왔다. 이 미국의 중동 정책의 전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중동에 영향력이 큰 유럽 주요국도 뭉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1일 "진상이 드러날 때까지 사우디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최근 사우디에 4억1600만유로(약 5400억원) 규모의 무기 수출을 승인했는데, 자국 피해를 감수하고 무기 시장의 큰손과 관계를 끊겠다는 것이다. 영국·독일·프랑스 3국 외교장관은 빈살만의 책임을 쏙 뺀 사우디의 '카슈끄지 사망 인정' 발표에 대해 공동성명을 내 "우리는 보충 설명의 신뢰성에 근거해 최종 판단을 할 것"이라면서 수용을 거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주 전 세계 투자자들이 사우디 증시에서 6억5000만달러(약 7630억원)를 회수했다'고 보도했다.

    진상 규명의 열쇠를 쥔 터키도 '빈살만 조준'으로 방향을 틀었다.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1일 "우리는 정의를 추구하며, 적나라한 진실을 48시간 내(23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터키 친정부 신문 예니샤파크는 22일 '사건 당일 피살 현장의 사우디 요원으로부터 왕세자실로 발신한 통화 기록 4건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당초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터키가 정의의 편에 서서 국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신망이 사우디 관계 파탄에 따르는 불이익을 넘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우디는 사태 무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우디 국영 SPA 통신은 22일 '국왕과 왕세자가 카슈끄지의 유족에게 직접 전화해 조의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주미 사우디 대사를 빈살만의 남동생에서 누이인 공주로 교체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해명에) 거짓도 있는 것 같다"면서도 "빈살만은 나라를 사랑하는 강력한 지도자"라며 제재는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AP와 블룸버그통신은 '빈살만 왕세자 교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고 분석했다. 그가 이미 나라를 구석구석 장악하고 왕실 내 유력 경쟁자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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