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일상시화] 여섯 행의 詩가 온전한 나를 만들었다

조선일보
  •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주인
    입력 2018.10.20 03:01

    '강가의 아틀리에'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주인
    유희경 시인·시집서점 주인
    어떤 시, 시인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도 꼭 먼저 떠올리는 것은 김종삼의 '묵화'다. 대학 시절 수업 시간을 통해 알게 된 이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고작 여섯 행에 글자 수도 적다. 그럼에도 아득하다. 드러난 것은 순간이지만, 그 안에는 할머니와 소가 함께 보내온 아득한 사연이 담겨 있다. 백미는 제목이다. 미술 화풍으로서의 '묵화'와 관련된 표현은 어디에도 없지만, 읽고 난 마음속에는 수수하고 담담한 묵화 한 폭이 떠오르고 만다.

    시와 그림은 닮은 데가 많다. 추구하는 바, 결과물이 가져오는 효과가 유독 그렇다. 장르의 제약을 사유와 상상력으로 극복해가는 과정 덕분일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내가 아는 시인들은 대부분 그림에 관심이 많고 그림을 그리고 만드는 사람들은 시를 아낀다. 얼마 전 나희덕 시인의 전시를 보러 갔다. 작은 전시 공간에 그간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바깥'의 존재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기성 작가들에 못지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도 이따금 찍고 또 그린다. 어디에 내세울 수 없어 혼자 보고 즐기는(사실은 괴롭지만) 취미다.

    '강가의 아틀리에'(열화당)는 화가 장욱진의 산문집이다. 1975년에 출간됐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개정증보판이 지난해 선보였다. 슬프면서도 따뜻한, 재치와 탐구가 공존하는 그의 그림 같은 글들이다. 화가의 '고백'을 통해 그의 소소한 생활과 생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그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글마다 자연스레 배어나는 그의 철학과 태도다.

    '강가의 아틀리에'
    새벽 산책을 좋아하는 장욱진은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자신이 사람임을, 관계와 관계 속에 살고 있는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오직 단 한 명일 수밖에 없는 자아임을 잊지 않는다. "우리들의 주위에는 여러 가지 좋은 모양과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많"다는 것 역시 잊지 않고 짚는다.

    김종삼의 시도 장욱진의 그림도 나를 나로 살게 도와준다. 지나칠 만큼 복잡한 관계 속에서 내가 나임을 잊지 않게 하고 나를 둘러싼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매번 거르지 않고 일깨운다. 이전투구로 가득한 이 세계에 아직 시와 그림이 필요한 까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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