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처럼 살 것인가, 늑대처럼 살 것인가

입력 2018.10.20 03:01

'여우 이야기'
여우 이야기|파엘 드 생끄르 외 엮음|민희식 옮김|문학판|344쪽|1만 6000원

12세기 프랑스에선 음유시인들이 저마다 여우를 주인공으로 삼아 다양한 우화를 써냈다. 이솝 우화와 구전 설화에 시인의 상상력을 보태 인간 사회를 풍자한 우화들이라 프랑스인의 재치를 대표해왔다.

여우는 프랑스어로 '르나르(Renart)'라고 한다. 고대 게르만어 'ragin(충고)'과 'hart(강한)'의 합성어로 '유력한 충고자'를 가리킨다. 중세인들은 여우를 지혜의 상징으로 여긴 것. 이 책은 현대 프랑스 시인들이 재구성한 여우 우화집을 원로 불문학자 민희식(84) 교수가 번역했다.

우화에서 여우는 힘센 늑대에게 굽신거리면서도 늑대를 골려 먹는다. 늑대가 숨겨놓은 음식을 도둑질한 뒤 태연히 늑대 앞에 나타나 '맛난 음식을 숨겨놓고 혼자만 먹는다'고 핀잔을 주는 식이다. 심지어 늑대의 아내를 농락하기도 한다. 중세 귀족을 가리키는 늑대는 여우의 죄상을 왕 노릇하는 사자에게 일러바친다. 여우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말썽꾼'이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기꾼'이다. 하지만 여우는 사자의 탄압을 재치 있게 피하면서 조롱하는 '풍자 시인'이기도 하다. 여우는 사제(司祭)도 놀린다. 악마와 똑같이 시커먼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 여우는 중세의 지배 권력에 맞선 '반항인'을 대변한 셈이다. 하지만 여우도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일이 잦다. 민중은 권력을 풍자하다가 자신을 해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우는 권력은 없지만 생존력이 강해 선악을 넘나드는 민중의 민낯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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