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미국이 막고 있다"

입력 2018.10.20 03:04

홍준기 사회정책부 기자
홍준기 사회정책부 기자
대북 의료 지원을 놓고 한·미 양국 정부가 삐걱대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왜 결핵약 지원 등 대북 의료 지원에 정부가 소극적이냐"라는 질문을 받자 "미국이 막고 있다"며 미국 탓을 했다. 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우리도 북한 '주민'의 건강은 걱정하지만 북한 '정권'이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무기 개발 등에 악용(惡用)할까 우려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러 갔다가 체포, 억류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도 걱정된다고 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나 도로·철도 연결 사업에서처럼 대북 의료 지원에서도 한·미 양국 사이에 이견(異見)이 표출되는 양상이다.

그런데 국감이 끝난 다음 복지부 관계자는 국회의원과 기자들에게 각각 다르게 얘기했다. 야당 소속인 김명연 의원(자유한국당)이 복지부에 "세부 사항별로 어떤 대북 의료 지원 사항이 어떤 제재 결의안에 저촉되는지 알려달라"고 하자, 복지부는 "그건 유엔이 판단할 부분이라 복지부가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복지부 관계자들은 본지의 문의에 대해서는 "약품·장비 지원 등을 하려고 검토해봐도 유엔(UN) 안보리 제재 결의안 때문에 쉽지 않다" "장관이 '이런 지원은 이런 제재, 저런 지원은 저런 제재 때문에 안 된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 국감에서 조금 세게 이야기한 것 같다"고 했다. 내부적으로 이런저런 검토를 해봤다고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진보건 보수건, 우리 국민 가운데 북한 주민을 돕자는 순수한 의도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진작 가라앉은 말라리아 같은 병으로 많은 북한 동포가 목숨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여당과 시민단체에서 "정치적 상황과 관련 없이 인도주의적 지원은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미국 국무부도 "유엔 안보리 승인을 받은 인도주의적 지원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이 "인도주의적 지원이 '나쁜 의도'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는 사안마저, 우리가 "미국이 못하게 한다"고 미국 탓하며 손가락질하는 게 옳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의료 지원 말고도 남북 철도 분야에서도 정부와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미국이 훼방을 놓는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것을 최근 종종 볼 수 있다. 인도주의적 지원과 경협도 좋지만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노력을, 북핵 최대 당사자인 우리가 앞장서서 흔드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버리고 정상적인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된다면, 대북 의료 지원과 남북 철도 사업은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의 전폭 지지를 받으며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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