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카페에 찍히자 하루 만에 업무마비
어린이집 원장 "폐원고민…맘카페가 무서웠다"
수업 중에 "사람 죽은 데 거기냐" 전화 걸려와

지난 16일 오후 5시, 경기 김포시 T어린이집. 하원시간이 되자 어린이들이 가지런히 '배꼽 인사'를 했다. 교사들이 웃었다.
아이들이 다 빠져나가자, 일부 교사들은 울기 시작했다. 교사들끼리 등을 토닥였다. '아동학대 가해자'로 지목된 이 어린이집 동료 교사가 투신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맘카페에서 ‘아동학대 의혹’이 제기된 경기 김포시 어린이집. 맘카페에 실명이 거론된 이후 이 어린이집에는 ‘테러’에 가까운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1일 김포시 통진읍 소재 어린이집 교사 A(37)씨는 인천드림파크 가을나들이 행사에 참가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김포지역 맘카페에 "아이가 교사에게 안기려고 했지만, 교사가 돗자리 터는 데만 신경 써 밀쳤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어린이집 실명이 공개되면서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글이 올라온 지 이틀 만에 A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날 만난 T어린이집 교사 12명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맘카페에 찍힌 이후 원장 김모씨는 교사들과 모여 ‘차라리 어린이집 문을 닫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거기가 사람 죽은 데냐"고 묻는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김씨는 "맘카페에 적힌 내용 중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ㅡ사건의 전말은 무엇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아동학대가 아니다. 숨진 보육교사 A씨는 지난 11일 현장학습에서 돗자리를 펴고 아이를 앉혔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지를 않고 계속 일어났다. 자리 정돈을 위해 잠시 저쪽에 가 있으라고 하다가 아이가 넘어졌다고 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의도를 갖고 밀친 걸로 보였을 수도 있다. 학부모께 사정을 설명을 드렸더니 '실수'였음을 이해하셨다. 그런데 이것이 구전(口傳)되면서 맘카페에 '아동학대'라고 올라온 것이다."

ㅡ어떤 내용이었나?
"지난 11일 처음에는 인천지역 맘카페에 의혹 글이 올라왔다. 아이가 교사에게 안기려고 했지만, 교사가 돗자리 터는 데만 신경쓰면서 아이를 밀쳤다는 왜곡된 내용이었다. 여기에서 '김포 맘카페에도 글을 올리라' 라는 댓글이 달렸다. 거의 실시간으로 김포 맘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순식간에 댓글이 50~60개씩 붙었다. 오후 4시 30분 김포 맘카페에서 보육교사 뿐만 아니라, 어린이 실명까지 나오더라. 오전에 현장학습을 나간 보육교사들이 어린이집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다. 맘카페가 무서웠다."

ㅡ사실관계를 바로 잡을 생각은 못했나.
"그날 이런 내용을 모르고 있다가 학부모 한 명이 연락해서 알았다. 어린이집으로 돌아온 A교사로부터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고, 최초에 의혹을 제기한 분에게 연락했다. 피해가 생기고 있으니 글을 내려달라고. 그 분은 '이렇게 일이 커질지 (나도) 몰랐다'고 하시면서 게시글을 삭제했다. 그런데 이걸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ㅡ맘카페 글이 삭제됐는데도 문제가 계속됐나
"(실명이 공개되면서) 어린이집으로 문의가 빗발쳤다.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어린이집에 경찰관이 찾아왔다. 누군가 우리 어린이집을 '아동학대'로 신고했다는 거다. 인터넷에 얼굴과 이름이 드러난 A교사 심정은 오죽했겠는가. 당분간 쉬라고 (A교사에게) 일렀다. 그 와중에 맘카페에서는 또 '아동학대 A교사가 일방적으로 해고됐다'는 유언비어가 올라왔다. 정말이지 감당이 안 되더라. 원장으로서 모든 학부모들께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

맘카페에서 ‘아동학대 가해자’로 지목된 이후 사망한 A 교사의 장례식장.

ㅡA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왜인가.
"12일 오후 1시쯤 밀쳐진 아이의 '이모'가 어린이집에 찾아왔다. 수업이 한창인데도 씩씩거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모님이 A교사의 얼굴에 냉수를 끼얹기도 했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워서 우리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가 넘어졌는데 일으켜주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기도 하고…이모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사죄 드린 것이다. 그래도 난동은 멈추지 않았다. 한 쪽에서는 아이들 수업을 하고 있었지만 고성은 두 시간이나 계속됐다."

이 일이 있은 다음날인 지난 13일 새벽 A교사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투신 장소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아이에게 미안하다. 다른 교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길 바란다. 홀로 계신 어머니와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포경찰서 관계자는 "A씨가 맘카페 문제제기 이후 심적 압박이 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ㅡ이 사건을 계기로 맘카페에 '역풍'이 불고 있다.
"맘카페에 좋은 정보가 공유되면 유용하다.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데'라는 식으로 몰고 가는 경우도 정말 많다. 누군가에게는 일터고, 누군가에게는 일상인 곳이 맘카페 글 몇 줄로 쑥대밭이 된다. 우리 어린이집이 아수라장이 되는데 반나절도 안 걸렸다. '아니면 말기' 식으로 몰아간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도대체 있겠느냐. 맘카페에 올리는 댓글 하나로 사람 목숨이 오가는 것이다."

ㅡ아동학대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에게 대처할 생각인가.
"그럴 마음은 없다. 교사도, 아이들도 너무 불안해하고 있다.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우선이다. 맘카페에 글이 올라왔을 때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그때는 맘카페에 맞서는 게 무서웠다. 지금은 또 어린이집에 찾아온 '이모'에 대한 신상털이가 시작됐다고 들었다. 이래선 안 된다. 맘카페가 또 다른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A교사 외에 또 다른 맘카페 피해자가 생길 것 같아서 걱정이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ㅡ정상적인 수업은 가능한 상태인가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교사들 전원이 불안에 떨고 있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다. '어린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느냐'면서 교사들을 달래고 있다. 우리 어린이집에 전화 해서 '거기가 사람 죽은 데냐'고 하는 건, 테러나 다름 없다. 저로서는 남아 있는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제발 멈춰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