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평소 '어공(어쩌다 공무원)'임을 자처해왔다. 지금껏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주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직업 공무원인 '늘공(늘 공무원)'과 달리 공직이 낯설다는 의미에서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식부터 주요 내부 행사 때마다 "늘공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어공이 되겠다"고 말해왔다.
아직 '어공'의 공직 적응기가 덜 끝난 탓일까. 김 위원장은 조직 내부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15일 국회에서 열린 공정위 국정감사에선 김 위원장과 주요 간부들 간의 불협화음이 만천하에 노출됐다. 김 위원장이 직무 배제한 '늘공' 간부들이 국감장에 나와 보스에게 칼을 들이댔다.
유선주 공정위 심판관리관은 "기업·로펌 등 사건 관계자와 외부 면담을 금지하는 내용의 지침을 만들려 했으나 윗선에서 조직적으로 막았다"고 폭로했다. 유 관리관은 판사 출신으로 2014년 9월부터 공정위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이달 10일 김 위원장으로부터 직무 정지 통보를 받고 모든 업무에서 제외됐다. 유 관리관은 "공정위가 조직적으로 나를 왕따시키고 하극상을 방조했다"고 주장했다. 졸지에 '하극상 방조자'가 된 김 위원장은 "직무 정지는 갑질 신고가 다수의 직원으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공정위 넘버 2인 지철호 부위원장도 김 위원장을 향해 날을 세웠다. 지 부위원장은 지난 8월 재취업 비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공정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을 위해 부위원장은 유죄판결을 받지 않는 이상 3년 임기가 보장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 부위원장을 모든 업무에서 배제했다. 지 부위원장은 국감장에 나와 "나에 대한 업무 배제는 문제가 있다"고 대들었다. 국감장에서 '콩가루 집안 같다'는 야당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김 위원장은 연신 손을 이마에 갖다대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과거 공정위는 주목받지 못한 부처였다. '공정 경제'가 경제정책의 한 축이 되고, '재벌 저승사자'란 별명이 붙은 김 위원장이 수장이 되면서 공정위는 정부의 핵심 부처로 떠올랐다. 김 위원장은 경제적 약자를 위해 하도급·가맹·유통·대리점법 등 소위 '4대 갑을 관계법'을 개선하고, 대기업 갑질 행태에 경종을 울리며 요란한 개혁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화려한 바깥 행보와 달리 조직 내 문제가 불거지자 제대로 수습을 못 하고 있다.
요즘 공정위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다. 수장이 공정위 핵심 권한인 전속고발권을 검찰에 양보하고, '늘공 간부'들을 적폐 취급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공정위 직원 600여명 중 타 부서 전출을 희망하는 사람이 63명에 달한다. 김 위원장은 뒤늦게 눈물을 보이며 단합을 호소하고 있지만, 어공 상사와 늘공 직원들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