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이대로면 한국에도 '불만의 겨울'이 온다

조선일보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입력 2018.10.16 03:17

    文 정부가 세간의 눈길을 '평양'으로 돌리고 싶어도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해
    시장을 '이념'으로 물들이는 J노믹스의 한계 뚜렷해… 市場 키우고 살리는 게 책무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일자리 감소가 '일자리 정부'를 계속 비웃는다. 실업자 수는 2000년 이후 최대로 늘어나 9개월 연속 100만명을 웃돌고 있다. 전체 실업률이 4% 안팎에 정체되어 있는 가운데 실질적 청년실업률은 20%를 넘어섰다. 지난주 후반 통계청이 발표한 9월 고용 동향은 특히 충격적이다. 가장(家長) 역할을 맡고 있을 30~50대 남성들의 고용률이 90% 이하로 내려간 것이다. 전반적으로 성장 동력은 식어가고 소득 분배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예·적금 중도 해지가 크게 늘고, 가계 부채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세간의 눈길을 아무리 '평양'으로 돌리고 싶어도 사람들의 시급한 관심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다. 내일의 안갯속 평화가 오늘의 고단한 경제를 덮을 수는 없어서, 한반도 데탕트 무드가 국정 지지도를 견인하는 힘도 확실히 처음만 못하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유난히 추웠던 1979년 겨울, 혼합 경제와 복지 국가 모델이 마침내 영국을 '무정부 상태'에 빠트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불길한 예감에 무게를 싣는 것은 고용 재난과 투자 절벽, 소비 한파 등에 대처하는 정부 당국의 태도와 자세다. 공공 통계의 변형이나 왜곡, '가짜 뉴스' 의혹 제기를 통한 진실의 부정, 유관 업계의 단체 행동에 대한 사실상의 위협, 공공기관을 향한 단기 일자리 물량 확보 압력 등은 다분히 변칙적이고 임시적이다. "지금까지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집권 여당 대표의 발언은 안이함을 넘어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다.

    근대 이후 국가 권력의 성패는 대부분 경제가 가늠한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가 정치적 금언(金言)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근대 경제 체제의 기본형은 두 가지 축에서 조합된다. 하나는 국가(계획)와 시장 가운데 어디가 경제 운용 주체인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성의 추구와 특정 이념의 실천 가운데 무엇이 경제 활동 목표인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장·합리적' 체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방식이고, '계획·합리적' 체제는 후발 내지 신흥 산업국가의 선택이었다. '계획·이념적' 체제는 구(舊)사회주의권의 경험을 통해 완전 실패로 판정났다.

    한편, '시장·이념적' 체제는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권력을 좋아하는 이념과 간섭을 싫어하는 시장은 반대 극성(極性)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J노믹스'가 시장과 이념의 결합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산업·고용·부동산·에너지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시장을 이념으로 물들인다. 소득 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공공 부문 고용 확대, 부동산 규제 강화, 탈(脫)원전 결정 등은 말하자면 이념 지향적 시장경제다. 그 배후에는 시장 자체를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1980년대식 운동권 논리가 군림하고 있다.

    시장경제는 인류의 오랜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제2의 자연이다. 자본이 독점이나 반칙을 통해 시장을 교란하고 위협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바로잡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자유롭고 투명하며, 다양하고 개방적인 시장의 천성(天性)이다. 국가의 기본 책무는 이런 시장을 만들고, 키우고, 지키고, 살리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 발전도 원리는 시장 친화적이었고, 김대중 정권의 IMF 위기 극복과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체결 또한 시장 원리에 따른 성과였다.

    영국을 '불만의 겨울'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탈이념·친시장의 힘이었다. 정부 축소, 시장 확대, 규제 완화, 세금 인하, 노조 개혁, 법치주의, 개인주의 등을 내걸고 진행된 보수당 정권의 '영국병' 수술은 노동당 간부들조차 "우리 모두 대처주의자"라고 선언하게 만들었다. '뉴라이트(New Right)' 이론이 등장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엉뚱하고 황당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친일과 독재비호, 냉전 수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사전적 의미를 잃어버린 그 뉴라이트 말이다.

    총체적 경제 난국 앞에서 지금의 집권 세력은 자신들이 당연시하고 신성시해 왔던 세계관과 역사관을 근본적으로 재성찰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여당 내에서도 J노믹스의 한계를 나름 깨닫는 분위기다. 시장에 이기려는 교조적 좌파와 시장을 읽으려는 합리적 진보 사이에 문재인 정부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죄 없고 힘없는 일반 국민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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