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루트' 개척자 김창호의 죽음, 산악인 슬픔 더 큰 이유 있다

입력 2018.10.14 14:24

"한국에서 전무후무한 산악인이었다."
2007년 한국 원정대가 파타고니아 파이네 중앙봉을 초등했을 때, 노시철(60·지리산 등산레저학교 산악대장)씨가 당시 원정대장, 김창호가 대원이었다. 노시철 씨는 김창호를 ‘전무후무한 산악인’이라고 표현했다.

"김 대장은 고(故) 박영석 대장처럼 산에 대해 묻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산악인 정신’의 표본과도 같던 인물이었습니다. 일주일 전 통화했을 때,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걸었던 지리산 둘레길을 함께 걷자는 얘길 나눴었는데…"

김창호(49) 대장과 4명의 대원이 네팔 구르자히말(Gurja Himal)산 3500m 지점에서 지난 12일 조난당해 사망한 채 발견됐다. 모든 죽음에는 애통함이 따르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악인 김창호’를 잃은 슬픔을 유독 더 크게 표현하고 있다.

인도 히말라야의 ‘다람수라(해발 6446m)’와 ‘팝수라(6451m)’에 신 루트를 개척한 김창호 대장의 ‘2017 코리안 웨이 인도 원정대’ 모습. /2017 코리안 웨이 인도 원정대
"지금은 제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김 대장과 산악 인생을 함께 했던 최석문(44) 대장은 ‘김창호’란 이름만 듣고도 말을 잇지 못했다. 최 대장은 2007년 당시 김 대장과 함께 파이네 중앙봉을 초등하고, 2016년 히말라야 강가푸르나(7455m)에서 이전에 없던 새 등반로, 일명 ‘코리안웨이’를 개척하는데 함께했다.

사고 현장에선 김 대장과 함께 산을 오르던 원정대원 유영직(51·장비 담당), 이재훈(24·식량, 의료 담당), 임일진(49·다큐멘터리 감독)씨와 정준모(54) 한국산악회이사가 함께 주검으로 발견됐다. 배경미 대한산악연맹 사무총장은 "김 대장은 물론 숨진이들은 모두 제게도 동생같은 친구들"이라며 참담한 마음을 전했다.

김창호 대장은 "산은 정복을 위한 대상이 아니다. 내가 가진 힘만으로 산에 오르고 싶다"고 말해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등산 방식은 아니었다.

김 대장은 국내 대표적인 등로주의(登路主義) 산악인으로 꼽힌다. 등로주의는 이미 개척된 루트를 따라가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달리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 등산의 ‘과정’을 중시하는 등반 철학이다. ‘등정주의’가 ‘등로주의’보다 편안한 등산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등로주의’가 산이라는 ‘절대적 난제’에 대한 인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산악인들은 등로주의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게 사실이다.

김 대장은 특히 무(無)산소, 무(無)동력으로 산을 타는 ‘알파인 스타일(alpine style)’로 이름을 떨쳐, 2013년 세계에서 14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무산소로 등정하는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14좌 완등을 앞둔 김 대장은 초연했다.

"신기록을 앞두고 있지만 14좌 완등을 목표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기록에 대한 욕심도 없다. 중요한 것은 등반 그 자체다."

김 대장은 2016년 강가푸르나 서쪽 미등정봉 아샤푸르나 정상을 100m 앞두고 하산할 때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정상은 원정대의 목표지, 목적은 아니다."

김창호 대장과 4명의 대원들이 시신으로 발견된 네팔 구르자히말의 계곡. /TV조선 캡처
김 대장의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가 오르던 구르자히말은 산악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오지(奧地)’다. 김 대장과 대원들은 이 오지를 완전히 새로운 등정로로 올라 ‘코리안웨이’로 명명하려고 했었다.

엄홍길 대장은 지난 13일 YTN과의 전화 연결에서 "사고가 발생한 지역은 산악인들도 등반을 잘 안 하는 고난도의 외진 곳"이라며 "김 대장이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그쪽을 정해서 등반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월간산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미지의 산과 빙하들이 많아요. 이런 빙하나 설산을 발견하는 순간은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고요. 거기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내 존재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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