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눈물"

입력 2018.10.14 14:21 | 수정 2018.10.14 15:29

문순태 작가는 쉼 없이 글을 쓰고 있다. 최근 '생오지 생각'이란 시집을 또 냈다.
문순태 작가, ‘생오지 생각’ 시집
‘눈물과 슬픔’의 색으로 인생 관조
권경안 기자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눈물이었다.’(‘희수를 맞아’)

산수(傘壽) 80의 나이에 시집을 냈다. 시를 쓰며 후학을 가르치는 문순태(文淳太)작가이다.

무등산 너머 고향 (전남) 담양으로 돌아간 때가 2006년. 이곳에서 ‘생오지에 누워’에 이어 5년만에 두번째 시집 ‘생오지 생각’(도서출판 고요아침)을 세상에 내놓았다.

‘내 삶은 아직도/정류장안을 서성대고 있다/이미 정해진 목적지대로/떠나기 위해 기다리는 곳/나는 이곳에서/얼마를 더 머무르게 될까’(‘정류장’)

아마 그는 담양 생오지 마을을 그의 마지막 정류장으로 여기고 있을지 모른다.

‘사람은 죽어서 풀씨로 돌아간다/…/사람도 풀씨도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것/…/바람부는 오늘/풀씨를 따라/어머니에게로 가고 싶다’(‘풀씨의 여행’)고 그가 말하듯, 인생을 되돌아보며 관조하는 삶은 ‘눈물과 슬픔, 그리고 행복’인 듯 하다.

그래서 ‘산머루 캐러 가신 엄니 기다리며/배고파 울다 지쳐서/사립짝문에 등 기대 앉은 채 잠든/유년의 그 아이/꼭 한 번 만나고 싶다’(‘꼭 한 번 만나고 싶다’)의 그 아이로 돌아가고도 싶은 생각인 것 같다.

‘유년의 그 아이’에겐 ‘취나무 비빔밥을 먹을 때면/해질녘에 허기져서 비척비척/산나물 보퉁이 이고 사립문 들어서는/어머니 모습에 목이 멘다’(‘취를 뜯으며’)

배고팠던 시절도 회고한다.

‘배고팠던 그 시절 우리들의 꿈은/한 양푼의 비빔밥이었다/…/밥그릇에 들꽃 가득 피었구나/지금은 이렇게 배가 부른데도/왜 자꾸만 눈물이 날까’(‘비빔밥을 먹으며’)

‘남자로 태어나서 시를 쓰는 게냐’란 꾸중을 들은 그는 힘겨운 청춘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한 번도 짜장면을 사주지 않으셨다’는 아버지에게 그는 ‘무지개’가 되어주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고1때 문예부 친구들과 한 시간 걸어/광주 양동시장 판자촌 짜짜루에서/처음 먹어본 짜장면은 검은 눈물 맛이었다/지금도 짜장면 먹을 때는 눈물과 같이 삼킨다’(‘짜장면’) ‘나는 아버지의 무지개가 되어주지 못했고/목이 아프도록 흐린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무지개 없는 세상’)고 했다.

젊은 시절, 소나기 처럼 살았던 그다. ‘나도 세상과 전쟁하듯 거칠게 살아갈 때는/내 몸에서 휘몰이 장단의 꽹과리소기가 났다/치열했던 젊은 날의 욕망과 몸부림이 그립다/…’(‘소나기 소리’)

그가 사는 일상도 보인다.

‘아내와 생오지 앞산 바라보며 핸드드리커피 마실 때/잠자리 같은 내 새끼들과 밥 먹으며 옛날얘기 할 때/…/허물없는 사람과 만나 마음의 빗장 풀고 담소 나눌 때/…/슬픈 음악 듣고 가슴 먹먹해 나도 모르게 눈물 흘릴 때/…/잘 살아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서 잘 살았다고 느낄 때’(‘79세에 찾은 행복’)

‘안티구아를 마실 때면/‘엘콘도 파싸’의 쿠스코 연주가/온 몸을 쥐어따듯 적신다/나는 지금 몽고반점 인디오들의/검은 눈물을 마시고 있다’(안티구아를 마시며’)

‘행복과 슬픔은/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다’(‘누구인가 나를 보고’)는 그다. 앞으로도 그가 가는 길은 계속될 것 같다.

‘차라리 혼자 걸을 때가/가슴 시리도록 눈분신 길/갈 곳이 없어 외로워도/끝없이 걷고만 싶다’(‘생오지 눈길’) ‘후회도 미련도 없이 살아가며/혼자 꿈꾸기 참 편안한 곳/생각할수록 그리움만 깊어진다’(‘생오지 생각’)

문순태 작가는 “어쩌면 삶이란 슬픈 이야기 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향기로운 기는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은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며 “내 시가 한 떨기 꽃이 되어 이 세상을 한껏 향기롭게 물들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했다.

문 작가는 광주고 시절부터 고 이성부 시인과 함께 당시 조선대교수였던 김현승 시인의 지도를 받았다. ‘현대문학’에 김 시인의 추천을 받아, 시로 등단한 그는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사회고발 성격이 강한 소설에 집중했다. 6.25비극과 분단, 5.18광주항쟁의 (소설을 통한) 치유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그는 적었다. 광주대 문창과 교수직을 내려놓고 귀향, 생오지 문학관을 열어 후진을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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