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은 '바링허우'라고? 모두가 착각한 중국의 청춘

조선일보
입력 2018.10.13 03:00 | 수정 2018.10.15 10:30

외동으로 자라 입시지옥 뚫었지만 현실은 습하고 추운 지하 단칸방
자본주의 물결 닥친 혼돈 속 중국 여섯 젊은이의 꿈과 좌절 이야기

'우리는 중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중국이 아닙니다|알렉 애쉬 지음|박여진 옮김|더퀘스트|444쪽|1만8000원

'바링허우(八零後)'. 1980년대생 중국 30대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2억5000만 명이 넘는 이들은 덩샤오핑이 1가구 1자녀 정책을 실시한 후에 태어났다. 사회주의 국가에 태어나 자본주의의 파도를 맞이한 중국의 신인류다. 이들은 풍요와 번영을 향해 급성장해가는 강대국의 '미래'이자 '희망'으로, '고뇌하는 청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영국 저널리스트 알렉 애쉬는 자신 또래인 1985~1990년 출생 중국 젊은이 여섯 명을 심층 인터뷰해 바링허우에 대한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출생에서 2014년까지의 삶을 생생한 디테일과 함께 미시적으로 들여다본다.

이들 세대는 수많은 별칭으로 불린다. 1987년생 스네일은 '생쥐족'이다. '스네일(snail·달팽이)'은 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지은 이름. 자기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를 이름으로 골랐지만 정작 그에게 집은 없다. '깡시골' 안후이성 출신으로 베이징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그는 집세를 아끼기 위해 아파트 지하실에 산다. 2000만 베이징 인구 중 대략 100만명이 지하에 산다. '생쥐족'은 이들을 일컫는다. 지하의 습기와 냉기 때문에 아내가 유산하자 스네일은 '개미족'이 된다. 베이징 외곽 방 세 개짜리 아파트 중 방 한 칸에 세를 든다. '개미족'은 외곽 아파트 단지에서 도심을 향해 출근길에 오르는 젊은이들 모습이 마치 일개미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989년생 루시퍼는 수퍼스타를 꿈꾸는 록밴드 가수다. 몇 번 취직했지만 금세 그만둔다. 그는 겉으로는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나약해 좀처럼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하는 '딸기족'이자 성인이 돼서도 부모에게 돈을 타 쓰는 '켄라오(啃老)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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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 애쉬가 인터뷰한 6명의 중국 젊은이들. 초강대국 중국의‘미래’로 불리는 이들 역시 취업 걱정과 앞날에 대한 불안 등 다른 나라 밀레니얼 세대와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더퀘스트
중국에도 '금수저'를 뜻하는 말이 있다. '푸얼다이(富二代)'는 재벌 2세, '관얼다이(官二代)'는 고위 관리자 2세를 말한다. 1985년생 프레드는 둘 다에 속한다. 그는 공산당 간부인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같은 바링허우라도 대학에서 신좌파 사상에 빠져드는 프레드와 중국 주석의 이름도 모르는 루시퍼의 삶은 양극단에 있다. 루시퍼 같은 이들은 '디아오쓰(屌絲 ·루저)'라 불린다.

'신세대'이지만 전통적 결혼관에서 자유롭지 않다. 1985년생 샤오샤오의 어머니는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맞은 딸을 '성뉘(剩女·남겨진 여자)'라 한다.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결혼 압박을 받는다. 자손을 낳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이기 때문이다. 노총각은 '광군(光棍·마른 나뭇가지)'이라 불리며, 아파트·자동차·돈이 없으면 '싼우난(三無男·세 가지가 없는 남자)' 소리를 듣는다. 1985년생 다하이는 광군이자 싼우난이다. 토목 일을 하는 그는 밥벌이에 대한 중압감이 크다. 외동으로 태어나 네 명의 조부모와 두 명의 부모로부터 관심을 흠뻑 받은 바링허우는 어른이 되면 조부모와 부모를 모셔야 한다.

책은 이들이 30대로 접어들며 신산한 현실과 맞닥뜨리고 타협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20대 때 일본 작가 하루키 소설을 즐기며, 인터넷 게시판에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던 다하이의 꿈은 '수퍼 히어로'에서 '부장'이 된다. 그는 결혼 후 '싼우난'에서 벗어났지만 이번엔 '대출노예'가 된다. 스네일은 아내가 다시 임신하자 양육비 부담에 낙향을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잘 산다는 것, 행복이라는 것,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라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질문하면서. '금수저' 프레드도 다르지 않다. 중국 최고 대학을 나왔지만 목표했던 대학 목록에서 최하위급인 작은 대학 교수로 임용된다. 그녀 역시 고향 하이난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금지옥엽으로 자라 입시지옥을 뚫고 진학해 겨우 취업에 성공했으나 '노예'라고 느끼는 바링허우.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처럼 촘촘히 엮어낸다. 워싱턴포스트는 "각각의 캐릭터가 정교하게 묘사된 이 서정적인 책은, 전례 없는 개인적인 성공 기회와 시스템을 제공받으며 성장한 가장 불안한 세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고 평했다. 원제 'Wish Lant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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